제주 애물단지 '감귤박'…규제로 '친환경 사업' 기회 놓치나
먼 바다에 버리던 폐기물, 친환경 포장재 기술 개발했지만 환경부 규제
감귤 가공철 다가왔는데…"올해 이미 틀렸지만, 내년에는 재활용할 수 있기를"
[제주=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해마다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는 이유를 정부도 이제 따져봐야 한다."
지난 14일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일해에서 만난 김영훈 대표의 일성이다. 수년간 규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김 대표의 발언은 무겁다. 제주도의 애물단지인 '감귤박'의 처리난을 해소함과 동시에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도 규제에 가로막혀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토로이면서, 융통성 없는 공직사회를 향한 우회적 비판이기도 하다.
일해는 감귤주스 농축액 생산업체로 연간 2만t의 감귤을 가공하는데 40%가량인 8000t이 감귤박으로 남는다. 감귤박은 감귤을 착즙하고 남은 껍질과 부산물로, 제주에서만 연간 5만~6만t가량이 발생한다. 법정 폐기물인 감귤박은 30여 년 전까지는 먼바다에 내다 버렸고, 20여년 전부터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감귤박 처리는 제주도민의 골칫거리다. 일해는 매년 매출의 5%가량인 5억원을 들여 감귤박을 도내 축산농가에 제공하고 있다.
처리비용 지불해야 했던 감귤박, 수익원으로 변신 기대했지만….
2010년 일해에 포장지를 공급하던 월자제지가 감귤박과 폐지슬러지를 적합한 비율로 배합해 골판지용 원지를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 특허까지 받았다. 처리비용을 지불하며 넘겨야 했던 폐기물 취급받던 감귤박이 제지업체에서 구매해가는 수익원으로 변신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기회는 규제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최근 몇 년 새 감귤주스 수요가 줄고, 축산농가마저 감소하면서 사료 처리의 지속 가능 여부도 불확실해졌다. 이에 감귤박 처리 문제를 고민하던 일해와 기술을 가진 월자제지가 감귤박 골판지 상품화를 추진했고, 감귤박으로 골판지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감귤박은 식물성 잔재물의 재활용 가능 유형에 포함되지 않아 사료나 비료로는 활용할 수 있지만, 종이의 재료로는 재활용할 수 없다. 환경부에 문의했지만 "감귤박은 순환자원 인정 대상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일해와 월자제지 측은 "커피 찌꺼기와 왕겨, 쌀겨 등도 순환자원으로 인정받는데 그보다 경제적 가치가 더 뛰어난 감귤박은 왜 안 되느냐"라고 반발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3월 커피 소비 증가로 커피 찌꺼기 발생량이 늘어나자 '순환자원 인정 절차 및 방법에 관한 고시'를 일부개정, 커피 찌꺼기를 순환자원으로 인정했다. 커피 찌꺼기를 폐기물에서 제외해 바이오 연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 대표는 "22년째 감귤주스 원료를 만들면서 축산농가에 감미 사료로 제공해 왔는데 최근 감귤주스 판매량과 젖소 농가가 동시에 줄어들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감귤박은 유해성이 적고 자원으로써의 활용가치가 높은 물질인 만큼 커피 찌꺼기처럼 순환자원으로 인정해 종이나 포장재로 재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창용 월자제지 대표(가운데)가 감귤박을 재활용해 제조한 골판지용 원지(오른쪽 밝은 종이)의 장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대표 왼쪽이 김영훈 일해 대표. [사진=중소기업 옴부즈만 출입기자단]
원본보기 아이콘환경오염·폐기물 처리비용 감소, 감귤 농가와 가공업체 모두 '윈윈'
이창용 월자제지 대표는 "감귤박을 배합해 만든 골판지용 원지는 파열강도와 인장강도가 우수하고, 물에도 잘 견디기 때문에 농수산물 포장용 골판지상자를 만들기 가장 좋은 소재"라면서 "폐기물로 처리되던 감귤박을 골판지 원지의 재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 골판지 원지의 원가를 절감할 수 있게 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골판지 제조원가가 하락하면서 제주도 내 감귤 가공업체와 농가 등은 골판지상자 구입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환경오염도 줄이고, 폐기물 처리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월자제지 자회사인 월자포장은 감귤박을 이용한 골판지 생산을 위한 설비증설을 이미 완료했고, 연간 30억원 규모의 판로도 확보했지만, 규제에 가로막혀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 대표는 "친환경 종이로 평가받으면서 기존 용지보다 30%가량 비싸지만, 수요는 오히려 늘고 있다"면서 "하루 30t을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을 확보했지만, 규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감귤박의 순환자원 인정을 위해 환경부와 협의를 벌이고 있는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환경부는 일부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도형 중기옴부즈만 전문위원은 "환경부가 순환자원 인정 기준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 중"이라면서 "다만, 환경과 인체에 무해하다는 사실이 검증되면 순환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고 설명했다. 감귤박에 대한 재활용환경성평가를 통해 환경과 인체에 무해함을 입증하라는 조건을 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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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일해는 현재 재활용환경성평가를 위한 컨설팅을 신청해 평가를 준비하고 있다. 재활용환경성평가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있지만, 감귤농사철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김 대표의 속은 타들어 간다. 김 대표는 "재활용환경성평가에 8개월 넘게 걸리고, 평가 후 환경부의 승인 여부도 확실치 않다"면서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3개월 일해서 1년 먹고사는 것이 현실이다. 올해는 이미 틀렸지만, 내년에는 종이 재료로 재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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