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만, 일본 등 반도체 강국은 정부가 나서 자국 산업 지원
한국은 발의된 K-칩스법은 국회에 막혀 여전히 표류 중
K-반도체 전망 '빨간불' 골든타임 놓치기 전에 법안부터 통과시켜야

[시시비비]국회는 K-칩스법 조속히 통과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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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돈은 민간이 많습니다. 딴지나 안 걸면 그게 지원책이지요."

최근 국내 반도체 기업 고위급 임원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정부의 반도체 지원책의 실효성을 묻는 말에 대한 답변은 상당히 거칠었다.


미국이나 다른 외국 사례를 들면서 막대한 지원금을 정부에서 내놓으면 그만큼 연구개발(R&D)에 탄력을 받을 수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는 역대 대부분의 정부가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지원책’을 거창하게 발표했지만 결국 해결해야 하는 건 온전히 민간의 몫이었다고 했다.

이런 토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한국은 ‘반도체에, 반도체를 위한, 반도체의 나라’라고 부를 만 했다. 반도체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물자로 떠오르고 미국 대통령은 ‘일개’ 한국 기업인 삼성전자에 협박과 애걸복걸을 동시에 들이밀었다. 뒤늦게 문재인 정부는 전폭적인 반도체 산업계 지원을 약속했고, 그 기조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지금 글로벌 반도체 전쟁은 기업 대 기업이 아인 국가 간 경쟁으로 확대됐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대만의 TSMC나 삼성전자에 비해 한참 뒤처진 미국 기업 마이크론은 최근 "역사상 가장 큰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들어가는 돈만 20년 간 최대 1000억달러(약 143조원).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CSA) 이 가능케했다. 중앙정부의 세액공제에 보조금과 주 정부의 지원까지 합치면 거의 절반을 나라에서 지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삼성보다 앞서 있는 TSMC에 대한 대만 정부의 지극 정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만 정부는 1980년대 TSMC가 만들어질 때부터 지원을 퍼부었다. 과학단지를 통해 법인세를 면제해주고, 대출금리를 낮춰줬다. 연구개발(R&D) 보조금도 아낌없이 쏴줬다. 인재가 모일 수 있게 산학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해줘 구름과 같은 반도체 전문인력들이 이 회사로 몰려가고 있다. 한동안 잠자고 있던 일본까지도 최근 6000억엔의 기금을 조성해 자국 내 반도체 산업 재도약에 시동을 걸고 있다.


눈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대통령은 여전히 반도체를 강조하고 있지만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여야는 국가 위기 상황에도 저급한 정쟁에만 몰두해 있다. 지난 8월 발의된 반도체특별법(K-칩스법)은 여전히 국회 표류 중이다.


현재 K-반도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7일 내놓은 3분기 실적(잠정치)에서 영업이익은 10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31.73% 쪼그라들었다. 공급과잉으로 가격 하락이 이어지고 있는 D램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반도체 부문의 정확한 실적은 따로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매출 1위’를 차지한 삼성전자가 TSMC에 1위 자리를 내줬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약점 극복을 위해 삼성이 해야 할 일은 천문학적 금액이 들어가는 파운드리 사업 강화다. 반도체 공장 하나 짓는데 30조원 이상이 필요한 투자를 민간 기업 혼자서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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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반도체 전쟁터에서 상대방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리고 있지만 우리는 납덩이를 주렁주렁 단 채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한때 전 세계를 휩쓸던 일본 반도체가 한국에 밀려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일이 삼성에게도 반복되지 말란 법은 없다. 반도체는 미래 생존과 직결된다. 더 늦기 전에 국회가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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