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모의 酒저리]"잃어버린 토종쌀 맛을 찾아서"…탁주 '자광도'
<2> 경기 양평 '달빛술래'②
1910년대 토종벼 1400여종에 달해…일제·산업화 거치며 사라져
김희경 대표 "토종벼, 우리 술 경쟁력 끌어올릴 잠재력 품고 있어"
이양 탁주 '자광도’… 자줏빛 토종 쌀의 맛과 향 그대로 담아
물 타지 않은 원주 형태로 만들어 재료 본연의 풍미 유지
[아시아경제 구은모 기자] 1910년 일본제국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이후 조선총독부는 수탈에 앞서 우리 땅의 벼 재래종 조사에 나선다. 조사에 착수한 지 2년이 지난 1913년, 총독부 산하 농업연구기관인 권업모범장은 자료집 한 권을 발간한다. ‘조선도 품종일람’이었다. 한반도 전역에서 재배되는 벼 품종을 수집하고 조사해 정리한 조선도 품종일람은 당시 이 땅에서 나고 자라는 토종벼가 1451종에 달한다고 전했다.
조사는 조사에 머물지 않았다. 조선 땅에서 재배되는 토종벼의 맛은 일제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고, 생산량 역시 눈에 차지 않았다. 일제는 다수확 품종인 일본의 개량종을 들여와 이 땅에 재배를 강요했고, 그렇게 토종벼는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광복 이후에도 토종벼는 발붙일 자리를 찾지 못했다. 쌀 증산이 우선 과제였던 박정희 정부는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국내 개량종)’로 품종을 통일했고, 토종벼의 귀환도 요원해졌다.
한때 천 종이 훌쩍 넘는 다양성으로 동네마다 지역마다 저마다 다른 밥맛과 술맛의 근간이 되었던 토종벼는 백년이란 시간을 거치며 우리의 입맛에서 까마득히 잊혀졌고, 우리가 이름도 맛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 사이 토종벼는 농토와 식탁이 아닌 연구실과 창고로 옮겨져 대부분 박제돼 버렸다. 현재는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유전자원센터에 450여 품종이 보존돼 있을 뿐이다.
우리 술의 경쟁력, 다양한 토종 쌀에서 찾아야
달빛술래 양조장은 토종쌀로 술을 빚으며 두 가지 꿈을 꾸고 있다. 토종쌀의 수요를 확보해 단절됐던 우리 쌀 맛을 이 땅에 다시 전승하는 일이 하나고, 토종쌀이 품고 있는 고유의 맛과 향으로 우리 술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나머지 하나다. 김희경 달빛술래 대표는 "몇몇 뜻있는 농부들이 토종벼 농사를 짓고는 있지만 꾸준히 수요가 유지돼야 계속해서 농사지을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겠냐"며 "열악한 환경에서 재배되고 있는 토종쌀의 명맥이 끊기지 않게 우리 쌀 술 빚기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토종벼가 우리 술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잠재력을 품고 있다고 믿는다. 음식에서 재료의 다양성은 필연적으로 맛의 다양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김 대표는 지금까지 우리 술은 주재료가 되는 쌀의 품종, 즉 재료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술을 어떻게 빚느냐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에 앞서 무엇으로 빚느냐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와인과 비교하면 김 대표의 문제의식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와인은 포도의 품종이 와인이란 큰 범주의 술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지만 우리 술은 그렇지 못하다. 그저 양조법에 따라 몇 가지 술을 구분해내는 데 그칠 뿐이다.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누아, 샤르도네 등 외국산 포도 품종은 듣기만 해도 맛과 향이 절로 떠오르는 반면 까투리찰, 불도, 붉은 차나락, 흑갱 등 우리 쌀의 이름은 생경하게만 들린다. 그는 "우리 술이 세계적인 명주와 겨뤄서도 밀리지 않는 저력을 확보하려면 고유의 맛을 품고 있는 우리 쌀이라는 재료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줏빛 토종벼로 빚은 이양 탁주 '자광도'
달빛술래 양조장의 탁주 '자광도(紫光稻)'도 토종 품종 쌀로 빚어졌다. 자광도라는 이름 역시 품종명에서 그대로 따왔다. 자광도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까락(벼 수염)부터 겉껍질, 알곡까지 자줏빛이 감도는 재래종으로 안토시아닌 함량이 높고 밥맛이 구수한 것이 특징이다. 조선 인조 때부터 재배된 것으로 알려져 임금님 수라상에도 오르던 품종이다. 양평 지역에서 난 자줏빛 쌀로 빚어낸 자광도는 은은한 자색을 띤다. 자색 쌀을 현미 상태로 사용해 술에도 재료의 색을 그대로 옮겨냈다. 술맛도 자줏빛 색과 닿아있어 새콤한 베리류의 향과 맛이 또렷하다.
탁주 자광도는 유기농 멥쌀로 담근 밑술에 자광도로 빚은 덧술을 더하는 이양주(二釀酒)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자광도의 핵심이 되는 덧술에는 자광도가 가지고 있는 색감과 맛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현미 상태의 자광도가 사용된다. 우선 자광도를 깨끗하게 씻어 48시간 이상 충분히 불린 다음 거친 입자가 드러나도록 빻아서 떡으로 쪄낸다. 이렇게 쪄낸 떡을 멥쌀로 담근 밑술에 누룩과 함께 잘 섞어 발효통에 넣는다. 자광도에는 김 대표가 직접 만든 누룩을 사용하는데, 밀 누룩을 기반으로 녹두로 만든 누룩 등을 섞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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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통에 담긴 술은 18~25도(℃)의 발효실에서 1주일 정도 1차 발효를 거쳐 13도 이하의 저온에서 2개월가량 추가 발효한다. 발효를 마친 술은 7도 이하의 저온에서 마지막으로 한 달가량 숙성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자광도의 알코올 도수는 16도(%)로 일반적인 막걸리와 비교해 도수가 높은 편인데, 알코올 도수를 조정하기 위해 술에 물을 섞는 제성 과정을 거치지 않고 원주(原酒) 형태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자광도를 비롯해 달빛술래의 모든 술을 물을 타지 않은 원주 형태로 만들고 있다"며 "원주로 내놓았을 때 술 본연의 풍미를 잃지 않고 그대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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