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장강명 작가의 소설은 주제 의식을 내포한다.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사라진 청년 현실을 꼬집는 ‘표백’(2011), 거짓과 모략이 판치는 조작 사회를 묘파(描破)한 ‘댓글부대’(2015), 노력 없이 불만을 거듭하는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는 ‘한국이 싫어서’(2015).


매번 시사성 있는 소재로 사회 비판적 작품을 선보였던 그가 이번엔 22년 전 발생한 서울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을 들고 돌아왔다. ‘과거의 윤리 의식이 현재도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통해 윤리와 정의에 의문이 맺힌 형사사법 시스템을 겨냥한다. 공동체 질서 유지에 동원되는 처벌이라는 수단의 적합성과 윤리성에 관한 의문이 작품을 관통한다.

주인공은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연지혜 형사. 그가 벌이는 미제사건 수사 과정을 통해 현대 사회 기저에 깔린 불안과 공허의 근원을 파헤친다. 6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은 원고지 3000매에 달해 두 권으로 분권했다. 긴 글을 멀리하는 독자 경향에 맞춰 점점 짧아지는 추세에 역행하는 소설. 저자는 대중성보다는 ‘쓰고 싶은 소설’을 추구했고, ‘분수령이 될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소설 ‘재수사’(은행나무)로 돌아온 그에게 지난 23일 질문을 건넸다.


'재수사' 장강명 “데뷔작 '표백' 쓸 때는 세상 끝났다 생각…지금은 희망 전하고파” [서믿음의 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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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로는 6년 만에 돌아왔다. 공백기가 왜 이리 길었나.

▲야심이 컸다.(웃음) ‘우리의 소원은 전쟁’(2016)을 마무리하고 중량감 있게 쓰고 싶었다. 그때부터 쓰고 싶었던 게 이번 소설이다. 그사이 글은 계속 썼다. 2019년에 소설집 두 편을 냈고, 2021년에는 에세이를 두 편 냈다. 칼럼도 많이 썼다. 이번 소설은 3년 전부터 바깥나들이를 자제하면서 집필에 집중했다.

-집필 활동 때 일과가 궁금하다. 집필을 안 할 때는 어떻게 보내나.

▲사실 집필을 안 할 때가 없다. 매일 6시 30분에 기상해서 글을 쓴다. 점심 먹고 나면 늘어져서 한숨 잔다. 오후에는 메일을 확인하고 자잘한 일 처리를 한다. 마감이 많다. 칼럼을 많이 줄여서 지금은 세 개 정도 쓴다. 주로 시즌제로 몇 해 하는 걸 택하는 편이다. 이런 건 재밌다. 방송도 몇 개 하고, 대개 비슷하다.


-글쓰기가 힘들지는 않나. 본인만의 루틴이 있나.

▲글 종류마다 다르다. 에세이 같은 건 쉽게 쓴다. 소설 쓰다 지쳐서 쓰는 경우가 많다. 무한정 쓸 수 있다. 소설은 마음먹기 나름인데, 어떤 소설은 금방 쓰지만, ‘재수사’ 같은 경우는 ‘이 정도로는 써야 한다’는 목표가 높아 힘들었다. 소설은 자주 막힌다. 이번에는 두세 번 막히면서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다.


-글을 다 갈아엎기도 했다고 들었다.

▲지금껏 소설을 쓰면서 갈아엎은 적이 세 번 있다. 이번이 그중 하나다. 대개 긴 소설을 쓸 때 그렇다. 단편은 플롯을 신경 쓰지 않고, 경장편은 플롯을 장악한다. ‘이렇게 써야겠다’고 하면 그렇게 써진다. 쓰다 보면 완성이 되는데, ‘재수사’는 ‘활로가 생기겠지’라고 시작했다가 막혔다. 끙끙 앓다가 묘수가 안 생겨 갈아엎었다. 상당히 속이 쓰렸다.


-소설은 결론을 정하고 시작하나.

▲반반이다. 단편은 되는대로 쓸 때도 있다. 105매까지는 그렇게 쓸 수 있다. 근데 경장편이면 플롯을 미리 짜 둬야 한다. 마지막 장면이라기보다 클라이맥스를 염두에 둔다. 그럼 마지막 장면은 따라온다. 경장편 이상은 클라이맥스가 하나가 아니다. 두세 개 정도 필요하고 서로 연결돼야 한다. 보통 하나 정도는 준비하고 시작하는데, 쓰다 수습이 안 되면…. 다시 쓰는 거다.


-범죄 소설을 펴냈다. 소재 선택의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특별한 이유는 없다. 본래 범죄소설을 좋아해서 막연히 범죄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형사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어떤 내용이어야 독자들이 잘 따라올까 고민하다가 장기 미제 사건을 재수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직 경찰들의 조언은 어떻게 받았나.

▲대개 (경찰청) 홍보 업무하시는 분에게 부탁해 형사분을 소개받고 그분에게 다시 다른 분을 소개받는 식으로 이어진다. 어떤 분은 그냥 본인 당직 서는 날 오라고 해서 무던하게 만나기도 하고, 어떤 분은 관심 가지시고 잘 얘기해주시기도 한다.


-기자 경력이 취재에 도움이 됐나.

▲(11년 기자 경력으로 얻은) 취재 테크닉이야 도움이 됐겠지만, 전반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경찰 기자를 1년 넘게 했는데, 돌아보니 수사를 어떻게 하는지 별로 배운 게 없더라. 사고 현장에는 많이 갔는데, 아는 게 많이 없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주인공(형사)을 여성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

▲범인은 개인과 싸운다기보다는 시스템과 대적하는 인물이다. 범인 반대편에 시스템이 있는 건데, 형사가 물리적으로 힘이 강하면 밸런스가 안 맞을 것 같았다. 균형을 맞추려다 보니 젊은 여성 형사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족도가 높은 소설이라고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지금까지는 청년 문제라든지, 댓글 문제라든지 한 영역에 국한된 문제였는데, 이번에는 이야기가 거대했다. 저의 큰 야심을 다 담은 것 같다. 만족도가 높다.


-대중 호응도가 높을 거라는 야심도 있나.

▲그렇진 않다. 그러기엔 소설이 너무 길다. 좀 더 대중적으로 쓸 수도 있었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이번 소설은 쓰고 싶은 대로 썼다.


-영상화를 염두에 둔 소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그런 점을 고려했는지.

▲영상 판권이 큰돈이 된다. 염두에 두지 않아도 자꾸 관심이 간다.(웃음) 다만 이번 소설에 독백 장면이 많아 영상화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또 범인 얼굴이 나오면 안 되기에 영상화는 힘들 것 같다.


-소설의 효용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웃음) 소설은 다른 인물의 내면을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매체다. 영화는 배우의 표정을 통해 추측하지만 소설은 직접 보여준다. 더 나아가 책을 왜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 문명의 좋은 것들은 다 책에서 나왔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소설이나 문학은 제게 너무 큰 존재다. 답을 찾기 어렵다.


-의미와 재미 중 무엇을 중시하는 편인가.

▲작품마다 의미를 넣으려고 한다. 소설을 쓸 때 주제를 굉장히 신경 쓴다. 주제 의식을 명료하게 한 다음 소설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전 당대독자를 상대하기보다 미래독자를 생각하고 쓴다. ‘반짝’하지 않았으면 한다. 20~30년 뒤에도 읽혔으면 좋겠고, 저보다 길게 남았으면 좋겠다.


-이번 소설을 통해 혹 의도한바, 독자에게 각성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나.

▲어떤 믿음이랄까,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 데뷔작 ‘표백’을 쓸 때는 이 세상이 이미 다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럼 대단한 일을 할 수 없는 것 아니겠나. 근데 지금은 아니다. 다음 세상을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밑그림을 ‘재수사’에 넣고 싶었다. 수백 년 전에 상상했던 현재의 세상이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 다루고 싶었다. (수백 년 전에는) 인간을 너무 이상적이고 낙관적으로 봤다고 본다. 그런 것들을 보완해서 다음 세상을 설계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앞서 의미를 중시한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재미를 아예 배제하는 건 아닐 것 같다.

▲부모님이 개를 키우신다. 개랑 지내는 게 재밌다. 산책시키고 밤에 껴안고 자고, 개 동영상 보고 그런다.(웃음)


-왜 직접 키우지는 않나. 그리고 과거 방송에서 부모님과 관계가 좋지 않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개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게 싫다. 나이를 좀 더 먹고 나서 키우고 싶다. 부모님과 관계는 개 때문에 좋아졌다.(웃음) 자주 매여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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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 문제의식을 느끼는 바가 있을 듯하다.

▲책 안 읽는 사람이 많아지는 게 걱정이다. 긴 글을 읽고 쓰는 일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크게 영향을 못 미치는 것 같다. 오히려 ‘느낌’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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