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논리에 포획된 한국 극장가
극장가에 정치 다큐멘터리가 유례없이 쏟아진다. 보수나 진보 논리를 노골적으로 투영한 작품들이 경쟁적으로 제작된다. '그대가 조국(2022)', '문재인입니다(2023)', '길 위에 김대중(2024)', '건국전쟁(2024)', '준스톤 이어원(2025)' 등 특정 정치인 찬양이 주를 이룬다.
바탕에는 상업적 수익과 정치적 영향력을 위한 진영 논리 편승이 있다. 특정 정치 팬덤을 공략하면 일정 수준의 매출과 화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정치적 선동성을 앞세우는 기형적 비즈니스 모델이자 대중의 갈등을 자본화하는 영화계의 얕은 상술이다.
다큐멘터리는 당연히 정치를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 다큐멘터리의 본질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 최근 몇 년 동안 스크린에 걸린 작품 상당수는 특정 정치인을 무조건 찬양하거나 한쪽 주장만을 주입했다. 편향된 시각으로 참사 등의 의혹을 키우기도 했다. 다큐멘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사라지고, 답을 강요하는 선전만 남았다.
그렇게 극장은 사색의 공간에서 확증 편향의 성지로 변질했다. 관객은 다른 시각을 접하고 질문을 던지는 대신,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경험을 한다. 영화 고유의 다양성과 가치는 희석되고, 사회적 대립과 양극화는 극한으로 치닫는다.
기형적 분열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역사는 정치 선전 도구로 전락한 영화의 운명을 명백히 보여준다. 20세기 전체주의 정권들은 다큐멘터리를 선전 도구로 동원했다. 혁명을 정당화하고 지도자를 우상화하며 적을 악마화하는 데 활용했다. 당대 최고의 영상 미학과 예술적 재능을 투입했다. 뛰어난 기술적 성취에도 작품들은 정권과 함께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남은 건 불명예뿐이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진영 논리의 다큐멘터리들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지금 극장가에는 진영의 나팔수가 아니라 시대를 응시하는 예술이 필요하다. 가치들의 대립 속에서 인간적 모순을 날카롭게 응시하고, 복잡한 현실 속에서 참된 인간성을 탐구할 수 있어야 한다. 관객에게는 답이 아닌 질문을 제시해야 한다. 단순한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 왜 이런 갈등이 발생했는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이런 다큐멘터리는 용기를 요구한다. 양쪽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고, 당장 박수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는 다르게 기억하며 찬사를 보낸다. 인도네시아 학살 가해자의 인간성을 응시한 '액트 오브 킬링(2014)', 미국 형사사법제도의 체계적 인종차별을 파헤친 '수정헌법 13조(2016)', 국가 감시의 실체를 폭로한 '시티즌포(2015)' 등이 대표적 예다. 상업적 유혹과 정치적 압력 속에서 독립성을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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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의 용기는 관객을 일깨우고, 각성은 건강한 공론장을 연다. 지금 극장가에 필요한 건 불편한 질문이다. 그것 없이는 다큐멘터리도, 예술도, 공론장도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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