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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믿음의 책담] “경제 우월 이분화에 가치 붕괴상황…내면 힘 키워야”

최종수정 2022.08.19 17:10 기사입력 2022.08.19 14:42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 김진명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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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거대 담론이 외면받는 시대다. 독자의 관심이 ‘사회’에서 ‘개인’으로 옮겨져 ‘교훈’보다는 ‘공감’에 초점이 맞춰진 지 오래다. 가치평가 역시 ‘의미’보다는 ‘실용’에 방점이 찍히기 마련이다. 인문학이 외면받고, 소설도 거대 담론을 주제로 한 책은 쉽사리 외면받는다. 많은 작가가 대중의 취향에 맞춰 변화를 꾀하는 이유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잊히는 기본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대표적인 이가 김진명 작가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슬픔과 비극을 외면하고 있다"며 "그 배려와 진지함이 사라진 공간을 매끄럽고 과시적인 대화들이 메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어 "어떤 진지한 공감도 애정도 없는 일상을 겪으며 우리 사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너무 행복에 몰두하면 오히려 행복할 수 없다는 역설. 작가는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불행이 꼭 손해를 뜻하지만은 않는다며 불행의 가치를 재정의한다. 지금껏 역사와 사회의 거대 담론을 주제로 소설을 써온 김진명 작가의 첫 에세이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 그는 에세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난 16일 그에게 질문을 건넸다.

-장편소설 ‘고구려’ 집필에 열중하는 것으로 안다. 그런 와중에 에세이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를 출간했다.

▲주로 정치, 경제, 외교, 안보, 역사, 문화를 주제로 소설을 써왔다. 거대 담론 말고 작가로서 개인의 삶에 관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특히 내면적 가치…. 그 어떤 인문학적 사유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경제수치가 아무리 좋아도 개인은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갈등과 고뇌와 대립만 격화하는 상황. 우리 사회는 지금 가치붕괴 상황에 빠져있다. 뭔가 내면적 가치 회복을 권하고 싶은데 소설 주제가 거대 담론을 다루다 보니 에세이를 쓰게 됐다.


-책을 보면 처절하게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일화가 무겁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작가에게 가난은 어떤 의미인가. 혹 그때로 돌아갈 만한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하나.

▲대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물질이 적을 때 가난하다고 한다. 반대로 물질이 꽉 차 있을 때 부유하다고 하고. 물질적 조건처럼 비인간적 요소가 그사이에 가로놓여 있다. 사실 가난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기에 굉장히 좋은 조건이다. 인간의 체온을 가장 따스하게 느낄 수 있을 때다. 가난이 배제된 삶은 인간의 소중함이나 상대에 관한 배려를 배울 기회를 상실하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난 (가난했던) 그때로 돌아가도 좋다고 생각한다. 기쁨과 행복은 모두 사람에게서 나온다. 지금은 사람을 상실하고 있는 시대다.


-인문학을 강조했다. 지독한 가난을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가난이 두려워 인문학을 멀리하는 청년들에게 한 마디 전한다면.

▲에세이에도 썼지만, 지식, 지위, 부, 외모가 편의상 외면의 힘이라고 한다면 반대쪽에는 내면의 힘이 있다. 인문학과도 연관이 되는 건데 우리 사회는 외면의 힘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 인류의 스승들을 보면 내면의 힘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 사회가 외면의 힘 일변도에서 벗어나 내면의 힘을 발견하고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약간의 불안을 견뎌내면 내면의 힘이 훨씬 낫다는 걸 알게 된다. 이건 인류 스승들의 가르침이다.

-책은 악서와 양서를 구분하지 말라는 식의 조언을 전했다. 다만 시간이 돈인 시대에 검증된 양서 위주로 읽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책을 권한다면.

▲일단 책을 좋아하게 되는 게 중요하다. 좋아하게 되면 버리지 않고 기억한다. 좋아하는 게 우선이기에 재미있는 책을 읽으라고 하고 싶다. 양서와 악서는 절대적으로 좋고 나쁘고를 나누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단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어 책을 좋아하는 게 첫걸음이다.


-내 존재 가치를 인지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그러지 못했을 때, 특히 황혼기에는 허무와 무기력감에 빠지기 쉽다. 특히 우리나라는 노년 행복도가 낮고 자살률이 높다.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나라 국민도 행복하게 사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 불행감은 사회적 가치가 붕괴한 데서 온 영향이 크다. ‘돈 없는면 죽는다’ 그런 의식이 지배하고 있다. 경제발전을 빨리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우월하냐 아니냐가 사람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굉장히 나쁘게 이분화됐다. 우울하고 불안한 분들이 인문학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내면의 힘을 빨리 발견했으면 좋겠다. 화려하게 파티하는 것보다 조용히 벤치에 앉아있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사회를 괴롭히고 후진성을 탈출하지 못하게 하는 많은 현상의 원인이 정치에 있는 것 같아도 사실 깊이 들여다보면 비극을 거세해 버린 개인의 삶에 그 원인이 있다"고 했다.

▲가치의 문제다. 우리 사회는 가치가 획일화돼 있다. 스스로 존재하는 내면적 가치를 찾아야 하는데 사회가 경직돼 있다. 본인이 인간의 온기를 발견하지 못하면 삶이 불행하고 사회가 척박하게 된다. 일방적인 시각을 극복해야 한다. 남 탓, 정치 탓, 사회 탓을 하지만 그걸 극복하지 않으면 아무리 정치가 잘 돼도 만족감이 오지 않는다. 경제 일변도로 치달은 탓도 있지만 내면세계의 가치를 놓아 버린 데에도 문제가 있다. 헌신, 희생, 봉사에서 오는 만족감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겠다는 꿈도 있지만 (중략) 열정과 시간을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쓰겠다"는 말도 했다. 작가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나만의 행복보다는 우리 사회, 이웃, 공동체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 시간을 쓰는 데 의미를 둔다. 내가 배제되고 남을 위해서 하는 것 같지만 사실 큰 기쁨은 거기서 나온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함께 생존할 때 즐거웠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내가 행복하고 기쁠 때는 남과 무언가를 함께 할 때다.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제 경우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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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나 문화재 회수에 무관심하고 미온적인 국민 태도를 꼬집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현실에 너무 지쳐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닐까.

▲나라의 힘이 경제에만 있는 건 아니다. 문화에도 있고 가치관이나 의식에도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경제수치에는 민감한데 보이지 않는 가치 속 의미 찾기에는 둔감하다. 결국 행복은 그런 가치나 의미에서 온다. 가치 공동체가 형성될 때 사회가 안전하고 행복해진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인데,

▲제 생각은 확고부동하다. 다만 그것이 절대로 드러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언론도 그걸 찾아낼 수도 없고 그건 행위자들에게서도 나오지 않는다. 최대한 논리적 추론을 끌어낼 수 있는 엘리먼트를 끌어내는 거다. 그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차기작으로는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가치관이 붕괴된 현 상태에서 어떤 가치관을 공동 가치관으로 만들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예전의 유교적 가치관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어떻게 합의를 모아 사람과 사람이 연대할 수 있는 가치관을 만드느냐가 중요한데, 근현대 위인들로부터 그런 가치 공감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제 지식인들부터 근대 계몽 지식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들 관찰해서 가치 체계를 세우는 작품을 쓸 계획이다.


-어릴 적 탐닉했던 독서로 집필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고구려’는 방대한 내용으로 열 권 분량에 아직 세 권이 남았다. 혹 집필에 어려움은 없나.

▲‘고구려’를 쓰게 된 계기는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뺏어가려고 거대한 작업을 하는데 한국 사회가 별다른 자각 없이 ‘삼국지’에만 빠져 있어서다. 국내 유명 작가들은 ‘삼국지’ 번역에 앞장섰고 고구려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고구려에 관한) 자료가 적어 쓰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제 과제는 ‘삼국지’보다 재미나게 쓰는 것이었다. ‘삼국지’는 수백 년간 수많은 사람이 가필을 해서 왕성한 문자 체계가 있다. 그것보다 재미있게 쓰기가 쉽지 않다. 머리를 쥐어 짜내야 한다. ‘삼국지’의 최대 기략은 손바닥에 불화(火)를 쓰는 것 아닌가. 간단하고 유치한 수준인데 그런 환상을 깨고 보면 고구려는 고급 기략 수십 가지가 숨어 있다.


-지금까지 일곱 권이 나왔다. 예상했던 것처럼 재미있게 쓰이고 있나.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삼국지’는 남성 독자가 대다수인데, ‘고구려’는 반이 여성 독자다. 그런 점에서 굉장히 만족스럽고 긍지도 느낀다. 성패는 나머지 세 권에 달렸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 ‘고구려’가 훨씬 재밌다는 독자 성원에 부응해야 하니까.


-거대 담론을 주제로 한 책이 인기를 잃고 있다. 이런 트렌드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가치 평가 측면에서 보면 하나의 흐름인 것은 맞다. 지식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가 실현됐으면 하는 바람을 지닌다. 개인철학이 나의 본령이긴 하지만 한국 사회가 몸을 의탁할 만한 가치체계가 너무 없다. 지식인으로서 한국사회에 무엇이 모자란 지에 관해 쓰고자 한다. 제시하고 싶은 가치가 있기에 내 글을 계속 쓰고 있다.


<김진명 작가는 누구>

거대담론을 소설에 담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국내 대표적 밀리언셀러 작가다. 대표작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천년의 금서’, ‘1026’, ‘삼성 컨스피러시’, ‘싸드’, ‘고구려’, ‘글자전쟁’, ‘미중전쟁’ 등이 있다.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나 보성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에 출간한 데뷔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흥행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정치·경제·역사·외교 등 한국 사회의 민감한 주제를 치밀한 분석과 통찰을 통해 소설로 구현하고 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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