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기 伊 총리, 사임 의사 표명…南유럽 재정위기 경고음
'소방수' 기대모은 드라기 사의…유럽 위기돌파 골든타임 놓치나
2011년 재정위기 직후 보다 부채 심화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연립정부 붕괴로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사임 의지를 밝히자 이탈리아의 정국 혼란이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드라기 총리의 사임서를 반려했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며 경제난을 타개할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특히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출신인 그에게 ‘경제 소방수’의 역할을 기대했던 남유럽 국가들은 코로나19와 에너지 위기, 인플레이션과 긴축 등 쏟아지는 악재에 혼란이 가중되는 분위기다.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과 ABC뉴스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드라기 총리는 이날 이탈리아 최대 정당인 오성운동(M5S)의 연립정부 이탈에 사임의사를 밝혔으며,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반려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대신 현재의 정치적 위기상황을 의회에 설명하고 해법을 찾아 달라고 촉구했다. 드라기 총리는 오는 20일 상·하원에 출석해 정국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악재 쏟아지는데… 연정 붕괴= 드라기 총리가 사임서를 제출한 것은 민생 지원 및 우크라이나 지원 등 현안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연립정부를 더이상 지탱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오성운동이 이날 260억유로(약 34조2376억원) 규모의 민생지원 법안과 연계된 상원의 내각 신임 투표를 ‘보이콧’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주세페 콘테 전 총리가 이끄는 오성운동은 그동안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계와 기업을 위한 재정 지원 등 문제를 두고 드라기 총리와 이견을 보여왔다. 일각에서는 드라기 총리를 향해 새 연립정부 구성도 요구하고 있는데, 다음 주 의회 연설에서 드라기 총리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힐 수도 있다.
코로나19 재확산과 에너지 위기, 물가 급등, 경기 침체 우려 등에 직면한 유럽 전역에서는 최근 정치적 위기가 잇따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인플레이션 우려에 선거에서 의회 과반수를 잃었고,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여러 스캔들로 끝내 사임했다.
대통령의 드라기 총리 사임 반려도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당장 조기 총선을 진행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가능성도 높다.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 번도 가을 총선을 실시한 적이 없다. 9~10월은 내년 예산안을 수립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 우려에 해법찾기 난항= 드라기 총리는 ECB 총재 출신인 만큼 유럽사회로부터 경제 대응에 대한 큰 기대를 받았으며, 코로나19 사태와 경제 위기 등 현안에도 무난히 대응해 왔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짧은 재임기간, 유권자들의 위임통치권 부재, 이념적으로 이질적인 연정이 항상 전면적 개혁의 발목을 잡아왔다.
유로존의 3대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가 정치 불안과 고질적 부채 문제를 타개하지 못하고 경제 위기를 맞을 경우 이는 유럽 전체의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심각한 부채 위기를 겪으며 기초 체력이 크게 훼손된 상황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재정 지출을 크게 늘린 남부 유럽 국가들은 더욱 그렇다.
경제 위기 직후인 2012년 127% 수준이던 이탈리아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올해 이미 150%에 달한다. 같은 기간 그리스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62%에서 185%로, 스페인은 86%에서 118%로 뛰었다.
최근 ‘1달러=1유로 등가(패리티)’가 무너지면서 ECB는 긴축을 서둘러야 하지만 남유럽 국가들이 발목을 붙잡고 있다. 경기 침체를 우려해 금리 카드를 아껴왔던 ECB가 이달 11년 만의 금리인상을 예고한 상황에서, 이탈리아의 연정 붕괴와 총리 사임은 재정위기에 대한 유럽의 정책적 대응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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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유럽 재정 위기 악몽이 되살아나면서 밀라노 FTSE MIB 주가지수는 3.4% 급락하며 2020년 11월 이후 최저치까지 밀렸다.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3.51%로 2주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독일과의 국채 금리 격차(스프레드)는 2.34%포인트까지 확대돼 연초 대비 두 배 이상 치솟았다. ECB는 다음 주에 여러 유로존 국가의 채권 수익률 간의 스프레드를 제한하기 위한 기구를 도입할 예정이지만, 독일이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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