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 "2024년 2월, 30조원이 한꺼번에 풀리는 날"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우리나라 사람들도 잘 모르는 대(大) 인플레이션 역사가 있다. 6·25 때의 일이다. 전쟁이 터지면서 당시 한국은행 직원들은 피난가기 바빴다. 미처 지하금고에 있는 105억원을 수송하지 못했다. 북한군이 서울을 함락하면서 이 돈을 접수했다. 돈은 전투가 치열했던 낙동강 근처에 살포됐다. 남한의 화폐 질서는 곧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예상도, 준비도 못했던 돈의 홍수가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70년 만에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전(前) 정권에서 만들고 금융위원회가 실행한 청년희망적금 때문이다. 2024년 2월이면 올해 2월 290만명이 가입한 청년희망적금의 만기가 돌아온다. 중간에 해지하는 사람을 감안해 250만명으로 계산해도 30조원을 훨씬 넘는 돈이 한꺼번에 시중에 풀리게 된다. "우리나라 물가 수준에 영향을 미칠 만한 ‘빅 이벤트(Big event)’"라는 게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매월 50만원씩 적금을 부은 청년의 경우 만기에 1298만5000원을 손에 쥐게 된다. 정부가 세금으로 주는 저축장려금(36만원)과 은행이 보통 적금보다 훨씬 높게 쳐준 이자(62만5000원)가 포함된 금액이다. 비과세 혜택까지 줘 연 9% 이자 효과를 낸다.
만기만 손꼽아 기다렸다가 필요한 데 쓰는 청년들도 있겠지만, 별 계획 없이 덤이 잔뜩 얹혀진 적금을 타는 청년들이 관건이다. "주식, 코인시장이 요동치지 않을까요." "해외 여행족이 급격히 늘어날 수 있겠죠." "명품 소비가 폭발할 수도요." 2024년 2월 이후 벌어질 일들에 대한 예상이다. 확실한 것은 30조원을 끌어오려는 기업들이 돈을 어디다 쓸지 모르는 청년들을 향해 부나방이 되라고 부추길 것이란 사실이다. 나랏돈을 들이고 은행 팔을 비틀어 만든 청년희망적금의 원래 취지는 ‘청년 목돈 만들기’였지만, 목표가 여기서 그치면 죽도 밥도 안 될 거란 의미이기도 하다.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은 ‘유도계획’을 사용해 왔다. 유도계획은 정부가 수출증진이나 전략사업 투자 같은 목표를 세운 다음, 민간 부분과 충돌하지 않고 협조를 얻어 그 목표를 이루려 노력하는 방법을 말한다. ‘유도’라는 단어에서 보듯이 법률적 구속력은 없다. 대신 정부는 보조금 지급이나 독점권 부여, 규제 같은 당근과 채찍을 써서 원하는 방향으로 경제 주체를 자극한다.
청년희망적금이 공중에서 휘발되는 걸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가 청년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유도계획’을 세워야 한다. 청년들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인 주거 문제가 대상이 될 수 있다. 종잣돈 1000만원이 없어 고시원과 변두리 월세방을 전전하는 청년들이 오피스텔에서 살 수 있는 시드머니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청년희망적금으로 전월세 보증금 중 일부를 마련하면 나머지는 주택금융공사에서 보증을 서주고 저리로 은행 대출을 해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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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희망적금이 안착해야 현 정부가 준비하는 청년도약계좌도 이를 본보기 삼을 수 있다. 30조원이 한꺼번에 풀리는 날은 2년이 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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