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지일이 추모하는 故 강수연
임권택 감독 '아제아제 바라아제'서 연기 호흡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서 재회…진심어린 당부
그 말에 힘얻고 한국서 연기 활동 재개
"시대의 아이콘, 곁에 살아있다고 느낄게"
계곡 바위에 둘러앉아 빨래하는 승녀들. 한 남성(현우)이 다가와 묻는다.
"스님들, ‘무’라는 것은 무엇이오? 없다는 것은 무엇이며, 마음을 비웠다는 것은 무엇이오?" "없음이란 반드시 있음에 대한 없음이 아닙니다. 우주의 가장 근원적인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그런 힘을 쌓고, 그것을 몸속에 축적하려는 몸부림이죠."
"죽는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주의 근원적인 어떤 것으로 되돌아간다는 것 아닙니까? 당신들도 죽으면 열반한다고 하지 않아요?" "앞길이 1만리 같으신 분이 왜 죽음의 문제부터 파고드십니까?" "돌려주고 싶기 때문이오."
남성은 물가에 돌멩이를 던지고 홀연히 사라진다. 일일이 응답해준 청화(순녀)는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에서 배우 강수연과 한지일이 처음 호흡을 맞춘 장면이다. 한지일은 또렷이 기억한다.
"모든 배우들이 동경하는 임권택 감독님과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수연이가 눈앞에 있었다. 설레면서도 긴장됐다. 필름으로 촬영할 때다. 실수로 엔지가 날까봐 조마조마했다. 수연이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어떤 연기든 능숙하게 해냈다. 옆에서 지켜보며 감탄했다."
강수연은 한지일이 엔지를 내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태백 탄광촌 여관에서 현우와 순자가 처음 관계하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카메라가 수평에서 직부감으로 바뀌는 3분 46초짜리 롱테이크 신이다. 한지일은 부자연스런 표현으로 핀잔을 들었다. 강수연은 풀 죽은 그를 다독이며 몇 번이나 같은 연기를 반복했다.
"수연이를 강압적으로 대하기 어려워 쩔쩔맸다. 한 스태프가 ‘여자랑 연애도 안 해봤냐’고 비웃더라. 그보다 더 힘들었을 수연이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다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더라. 나보다 어리지만 베테랑이었다."
완숙한 연기는 상대 배우도 춤추게 한다. 한지일은 강수연을 통해 실감했다. 눈빛만 봐도 의도했던 감정이 샘솟았다.
"현우가 병원에서 목숨을 건지고 순녀를 마주하는 장면이 있다. ‘내버려 두지 않고, 왜 살려줬어요?’라고 묻는 얼굴이 클로즈업 샷으로 나타난다. 사경을 빠져나오자마자 사랑에 빠지는 장면인데, 특별히 감정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수연이 연기만 보고 있어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눈빛 하나로 이끌어주는 배우였다."
순녀는 파계하고 맨몸으로 세속을 떠돈다. 중생을 구원하는 대승적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으려 한다. 강수연은 종교적 주제를 인간적으로 그려내 1989년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월드 스타’라는 칭호도 얻었다. 한지일은 "남다른 노력으로 순자의 운명을 통찰해 이룬 성과"라고 했다.
"임권택 감독님의 지시에만 매달려서는 절대 그릴 수 없는 배역이다. 비구니의 삶이나 속세의 고뇌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수연이는 기대 이상이었다. 연기하면서 구원을 받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씨받이(1987)’에서 출산하는 연기를 보고 유능한 배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실제로 상대해보니 영화 속 모든 흐름을 꿰뚫고 있더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강수연은 그 뒤 ‘경마장 가는 길(1991)’,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지독한 사랑(1996)’,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송어(1999)’ 등 다양한 색깔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전만큼 호평이나 갈채를 받진 못했다. 한동안 연기를 멀리하기도 했다. 한지일도 배우로서 롱런하지 못했다. 제작사 한시네마타운을 차리고 ‘젖소부인 바람났네’ 시리즈를 흥행시켜 성인비디오 시장의 거물이 됐지만 IMF 금융위기에 따른 파산과 이혼으로 도미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에서 온갖 일을 겪으며 고생하다 2017년에 귀국했다.
한지일은 "1990년대 초중반 큰 규모의 작품이 줄고 세대교체가 이뤄져 설 자리가 좁아졌다"고 했다. "영화에 계속 출연하고 싶었지만 좋은 기회가 많지 않았다. 임권택·이두용 감독 등과 문학적 작품을 함께한 세월이 행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수연이도 비슷했을 거다. 당시 떠돌았던 흉흉한 소문은 모두 거짓이다. 수연이는 연기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이 있었다. 저 같은 배우도 작품을 가려서 찍었는데, 수연이는 오죽했겠나."
두 배우는 2017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신성일 회고전에서 재회했다. 강수연은 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다. 백발이 다 된 한지일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깊은 포옹으로 반겼다. 두 손을 꼭 잡고는 "선배님, 미국에서 고생하신다고 들었어요. 인제 그만 돌아오세요. 좋아하는 연기하시면서 사세요"라고 했다. 한지일은 "‘아제아제 바라아제’만큼이나 잊지 못할 당부였다"고 회고했다.
"캐리어 가방 하나 들고 한국을 찾았을 때다. 그 말에 힘을 얻어 지금까지 머무르고 있다. 중편영화 한 편과 웹드라마 한 편에 참여했다. 오는 10월에는 40년 만에 연극 무대에도 오를 것 같다. 저를 기억하는 분들에게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주고 싶다."
강수연의 별세는 충격 이상일 수밖에 없었다. 김중도 앙드레김 아뜰리에 대표에게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면회가 금지돼 굳게 닫힌 문만 바라보며 눈물을 쏟았다.
"수연이 말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먼저 가버리면 안 되지 않나. 다들 같은 마음이더라.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임권택 감독도 빈소를 차리며 뜨겁게 우시더라. 김혜수, 김승우, 예지원, 문소리, 이병헌 등 후배 배우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고. 하나같이 수연이에 대한 좋은 추억만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수연이는 그만큼 소중했다."
한지일은 11일 영결식부터 장지까지 함께 한다. 영화로 맺은 인연을 소중히 새기고 다시 새로운 걸음을 내디딘다. 강수연이 인도한 배우의 길로. "수연아. 난 토끼 같은 네 명랑한 성격이 그렇게 좋더라.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이 기억할 거야. 너는 마릴린 먼로 같은 시대의 아이콘이니까. 그렇게 우리 곁에 살아있다고 느낄게. 좋은 곳에서 푹 쉬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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