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탈출 고려인, 입국 한 달째 '힘겨운 한국살이'
'247만원 전재산' 4인 가족…"좁은 단칸방 생활에, 취업도 만만치 않아"
[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박준호 기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22일 광주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만난 고려인 3세 문 나탈리아(40·여)씨 말이다. 전쟁터 우크라이나에서 급히 탈출하는 바람에 달랑 비상금 247만원만 챙겨 나왔다. 부모님 두 분을 모시고 남편과 함께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최근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등록 절차를 끝내고 외국인등록증을 취득한 그는 전날부터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남편은 90일 동안 체류 가능한 동포방문(C-3-8)로 입국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자 변경이 되기 전까지는 '가장'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야하는 셈이다.
그는 "오래 전에 고려인마을에 정착한 친오빠와 동생에게 당장은 의지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신세를 질 순 없지 않느냐"며 "앞으로 한국에서 쭉 정착해서 살 텐데, 기회가 되면 통역사로 일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현지 대학교에서 한국어학과를 나온 문씨는 우크라이나어뿐만 아니라 러시아어도 유창하게 잘한다. 하지만 "남편은 이제 막 '가나다라'를 배우고 있어 많이 서툴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크다"고 털어놨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33㎡ 남짓 원룸이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의 화약고로 변하기 전에는 남편이랑 단 둘이 방 5개가 딸린 주택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
문씨는 "삶의 터전을 버리고 피난을 왔는데, 고생길이 훤하다"며 "좁은 공간 때문에 불편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원래 살던 집 마당에서 자주 해먹던 러시아식 꼬치구이인 '샤슬릭'은 꿈꿔 볼 수도 없다"며 "원룸에선 냄새와 연기 때문에 요리하기가 너무 어렵다. 평화로웠던 그때가 너무 그립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남부에 위치한 니꼴라예프 주 소도시에서 살다가 졸지에 피난민 신세가 됐다.
러시아 군의 총포탄을 피해 지난달 15일 항구도시 '오데사'로, 이틀 후에 버스와 배를 타고 '루마니아'로 갔다. 비자 발급 문제로 2주간 대기하다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피난길 상황을 떠올리며 "활기찼던 동네는 폭격으로 유리 파편이 널브러져 있었고, 도로에는 불발된 미사일이 공포감을 자극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한국에 와서도 매일 뉴스를 보며 러시아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마을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전쟁이 하루 속히 끝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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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한국에서 추억을 쌓으며 소소한 행복을 찾고 있다. 문씨는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떠난 임자도 튤립축제가 기억에 남는다"며 "좀 더 여유가 생기면 케이팝도 듣고 한국 문화를 몸소 체험해 보고 싶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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