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과학기술을 국정 운영의 중심에 놓는 정부가 되어 달라."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기간 과학기술단체들의 요구였다. 좁게는 과학기술 연구개발(R&D)을 더 지원하고 인재를 등용해 달라는 의미였지만, 넓게는 ‘과학자적’ 또는 ‘과학적’ 리더십에 대한 소구였다. 세월호 참사 후 모든 정부 부처·지자체, 심지어 민간 조직·기업들까지도 안전 담당 기관·부처를 신설한 것과 마찬가지다. 안전을 기준으로 행정·관리·경영의 전반적인 쇄신을 단행했듯이 과학적인 리더십으로 국정 혁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과학적인 리더십’은 무엇일까? 20세기 과학자 중 가장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떠올려 보자. 천재, 괴짜, 엄청나다는 아이큐, 고독, 번뜩이는 아이디어, 옹고집 등이 떠오른다. 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비슷했다. 과학기술의 태동 시기, 연구 환경과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척자’들이 가진 한계이기도 하다.


현대 과학자들의 리더십은 그들의 작업 과정을 보면 대강을 짐작할 수 있다. 기존의 모든 학설을 부정해 보는 치열한 문제 의식, 번뜩이는 아이디어, 창의력으로 가설을 세운다. 모든 선행 연구와 해외 이론들까지 살펴 본다. 이후 자신이 세운 가설을 객관적·중립적 실험을 통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한다. 뿐만 아니라 동료의 검증까지 거쳐 논문을 발표한다. 과학자들은 이를 위해 어느 직업인보다 많은 지식을 갖춘다. 호기심과 노력으로 습득한 많은 지식이 없다면 가설은 세우기도 힘들다. 합리적인 의사 결정 과정이 몸에 밴다는 점도 추측할 수 있다. 실험, 객관화된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명확한 근거를 갖고 활발한 토론과 의견 제시, 검증 등 소통 과정을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을 반복할 테니 말이다.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 교수의 ‘증언’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의 지성들만 모인 미국 물리학회 차기 회장에 선출될 정도로 탁월한 과학자적 리더십을 갖췄다. 그런 그가 과학자가 된 비결로 인내와 끈기, 노력, 그리고 소통 능력을 들었다. 그가 전공하는 입자가속기를 통한 물리학 연구에는 최대 1만5000여명의 과학자들이 협업을 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괴력의 천재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이들이 성과를 내는 것은 물론 개인적인 창의력·아이디어·끈기·노력·인내를 바탕에 뒀지만 결국엔 ‘소통’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이미 각종 과학들이 개념과 원리를 잡는 기초 단계를 벗어난 지 오래다. 개인으로는 아인슈타인 100명이 와도 혼자 성과를 남기기 힘들다. 최고의 장비와 인력들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장기간 협력해야 겨우 성과를 낼 정도로 난이도가 높아지고 성숙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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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시대, 눈만 뜨면 새로운 과학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사회에선 이 같은 과학자적 리더십이 필수다. 우선 많이 알아야 한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더라도 다방면에서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가치와 철학이 배제된 단순 위임만으로는 제대로 된 리더십이 불가능하다. 과학자들이 논문 쓰듯 현실에 바탕을 두고 철저한 준비와 연구, 검증, 소통을 통해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도 지난 2월 과학기술단체 초청 정책 토론회에서 "과학기술을 국정 운영의 중심에 두겠다"고 한 바 있다. 잇따른 무속 논란에 반가운 선언이었다. 그러나 최근 모습은 실망스럽다. 어느 날 갑자기 고독한 밤샘 후 많은 예산과 혼란이 불가피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전격 강행하는 것은 과학적 리더십이 아니다. ‘들어 가면 못 바꾼다’ ‘공간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건 어느 실험에서 나온 결론인지? 윤 당선인이 대통령 취임 후에도 과학적 리더십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이어가길 바란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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