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부검 '학대' 판단..양부모는 부정
췌장 절단·머리와 팔 골절...전형적인 학대 판단
증가 추세 아동 학대 근절 노력 필요
대한민국의 법의학자에게 하고 싶지 않은, 즉 피하고 싶은 부검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부분은 어린이 사망 부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차갑고 커다란 스테인리스 부검대의 절반도 차지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올라온 것을 볼 때는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법의학자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어린아이의 부검이 오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법의학자도 있다. 대부분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자식으로 둔 경우다.
아이가 사망한 경우 형사들이 들고 온 현장 사진과 진술을 읽고 있다 보면 21세기 극도로 낮은 출산율로 고민하는 대한민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화가 날 때도 있다. 아이의 죽음은 실제 재판에서 치열하게 공방이 벌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외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는 주장과 이러한 주장의 모순을 밝히려는 검찰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는데 이때 법의학자의 증언을 듣는 것은 이제는 확립된 절차다.
증인이 돼 법정에 서는 순간부터 피고인 변호사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법의학자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부터 시작해서 실제 사건의 재구성을 100% 확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 공세에 대부분의 법의학자가 부담을 느끼게 된다.
휴대전화를 받았을 때 다짜고짜 ‘○○경찰서 ○○○형사입니다. 교수님. 오늘 시간이 되시는지요?’라고 할 때는 큰 사건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날도 오전 11시40분에 전화가 와서 오후 2시에 오겠다고 통보를 받고 조금 당황했다. 원래 계획됐던 실험 데이터 확인을 미루고 기다렸다. 두 명의 형사가 찾아왔다. 조금은 나이가 있는 남자와 젊은 여자 형사였다. 인사와 명함을 주고받은 직후 바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뉴스 보셨지요? 저희 서 관할에서 아이가 한 명 사망했습니다. 부검은 국과수에서 했는데 아이 엄마가 절대 자신은 아이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하네요. 교수님이 의견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국과수에서 부검하면 대부분 정확한 사망 원인이 나와 문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주 가끔은 피의자가 행위를 부정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대학의 법의학자를 찾곤 한다. 내용을 보니 바로 당일 아침에 잠깐 본 기사의 사건이었다.
"16개월 된 아이가 췌장이 파열돼 죽었는데 아이 엄마, 정확히 말하면 입양한 양모가 자신은 폭력을 휘두른 적이 없다고 지속적으로 진술하네요. 한 번 아이를 안았다가 가슴 수술을 받은 팔이 아파서 떨어뜨린 적만 있다고 하는데 이런 손상이 발생할 수 있나요?" 찬찬히 아이의 부검 결과를 살펴보았다.
아이에게는 복부에 췌장이 최근에 절단돼 배 속에 600㎖l의 혈액이 고여 있는 것 이외에 장간막(복막의 일부)이 찢어진 흔적이 관찰됐고 주변과 유착된 것으로 보아 3주 이전부터 최근까지 지속적인 물리적 외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복부 손상 이외에 머리뼈와 팔뼈 골절 등이 다양한 시기에 발생한 것도 보여 전형적인 신체 학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됐다. 분명히 오랫동안 지속된 학대의 흔적은 아이의 몸에 확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검찰은 살인죄와 예비적 죄명으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치사)으로 기소했고 아동복지법 위반을 덧붙였다. 1심 재판에 전문감정인으로 참여했을 때 양부와 양모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정말 멀쑥하게 생긴 점잖은 중산층으로 보였다. 양모의 진술에 모순이 있음을 진술하자 얼굴을 들어 나를 쳐다보았을 때는 날카로운 눈매를 확인할 수 있었으나 외모만으로는 그런 잔혹한 일을 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결국 1심에서는 양모에게 살인죄를 물어 무기징역이, 양부에게는 징역 5년이 선고됐고 이후 2심에서는 양모에게 35년, 양부에게는 5년이 적용됐다.
우리 법에서는 살인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살인의 고의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살인의 고의는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가 폭행 등 행위로 인해 타인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성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했다면 고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대법원 2000. 8. 18. 선고 2000도2231 판결).
가해자가 범행 당시 살인의 고의는 없었고 단지 상해 또는 폭행의 고의만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할 때는 ①피고인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②범행의 동기 ③준비된 흉기의 유무·종류·용법 ④공격의 부위와 반복성 ⑤사망의 결과 발생 가능성 정도 ⑥범행 후 결과 회피행동의 유무 등을 재판부에서 사정을 종합해 범행 당시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를 판단한다.
결국 이는 재판부의 판단이며 법의학자는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 사건 역시 재판부의 종합적인 판단으로 죄목과 그에 따른 양형이 결정될 것이다.
201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2012년에서 2015년까지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인 성폭력, 유괴, 살인이 감소 추세인 데 반해 아동학대 발생 건수는 4년간 6403건에서 1만1715건으로 약 83% 증가했다. 이러한 증가의 원인은 아동학대 발생 자체가 증가한 면도 있으나 사회적 인식 증대에 다른 신고율의 증가, 조기 발견체계 구축 등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편 아동학대의 국가 간 비교를 위해서는 아동인구 1000명당 학대 발생 건수를 사용하는데, 2014년 미국의 경우 9.4건이었고 우리나라는 1.1건이었다. 우리나라가 아동학대 발생 건수의 절대적 수치는 낮지만, 미국의 경우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수치의 변화가 거의 없는 반면, 우리나라는 0.6건에서 1.1건으로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분명 우리가 눈여겨 볼 부분이다. 최근에 아동학대 사건 발생 시 사회적으로 공분이 표출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도 이제는 아동학대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명확한 근절을 위해 더 큰 노력이 실행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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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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