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조건부이첩·선별입건 포기… 개정 사건사무규칙 내일부터 시행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후 검찰과 갈등을 빚기 시작한 대표적 원인 중 하나였던 ‘공소권 유보부 이첩권’(조건부 이첩권)의 근거조항을 삭제하고 더 이상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또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관련 고발 사건을 여러 건 입건해 수사하며 정치 편향성 논란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선별 입건' 제도도 폐지된다.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 등에 대한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와 위법한 압수수색으로 야기된 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한 인권수사정책관 제도도 시행된다.
공수처는 이 같은 내용들을 담은 개정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을 14일 관보에 게재한 후 시행한다고 13일 밝혔다.
조건부 이첩과 선별 입건 조항을 삭제한 개정 사건사무규칙은 지난 1월 26일 공수처가 입법예고한 바 있다. 또 사건사무규칙 개정에 따라 사건조사분석관을 폐지하고 인권수사연구관 직위를 신설하는 내용이 담긴 '공수처 직제' 일부개정규칙안은 지난 3일 입법예고됐다. 공수처는 입법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토대로 인권수사연구관의 명칭을 인권수사정책관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검찰과 대립했던 '조건부 이첩' 조항 삭제… 검찰에 이첩한 사건은 검찰이 기소 여부 판단
개정안은 먼저 처장이 다른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하면서 수사 완료 후 사건을 다시 공수처로 이첩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사건사무규칙 제25조 2항 단서 및 규칙 제14조 3항 1호 나목과 다른 수사기관의 수사절차 진행 중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규칙 제24조 3항을 모두 삭제했다.
이들 규칙은 공수처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가진 사건의 경우 검찰에 사건을 이첩하면서 기소권을 유보할 수 있도록 한 조항들로 ‘공수처법 해석상 조건부 이첩이 가능한지’를 놓고 공수처와 검찰이 상반된 입장을 보이며 갈등이 심해지던 와중에 공수처가 사건사무규칙을 제정·공포하면서 의도적으로 넣었던 조항들이다.
문제의 발단은 ‘김학의 불법출금’에 연루된 이규원 검사 사건이었다. 수원지검에서 사건을 이첩받은 공수처는 다시 사건을 수원지검으로 이첩하면서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최종 판단할 테니 수사를 마친 뒤 사건을 다시 공수처로 송치해달라’는 조건부 이첩을 했다.
하지만 수원지검이 ‘듣도보도 못한 해괴망칙한 논리’라고 반발하며 자체 수사를 마친 뒤 이 검사를 재판에 넘기면서 공수처와 검찰의 갈등은 점점 심화됐다. 이 검사는 재판에서 ‘공수처가 기소해야 될 사건을 검찰이 기소했기 때문에 공수처법에 위반된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수처는 규칙에 명문 규정을 넣어서 사태를 해결하려 했지만 검찰이 따르지 않고, 법원마저 공수처 편에 서지 않으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조항들이었다.
하지만 공수처는 지난 1월 ‘공수처법 주석서’를 발간하면서도 공수처장이 검찰에 수사권한만을 분리해 이첩하는 조건부 이첩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담았다. 물론 당시 공수처는 주석서 내용이 공수처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업무 수행에 참고하기 위해 주석서를 발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출범 1년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수사 성과는 내지 못한 반면, 위법 수사와 정치 편향성 논란에 휩싸인 공수처가 스스로 몸을 낮춰 다른 수사기관과의 갈등 요소를 배제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입법예고 당시 공수처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문제 해결 등을 위해 조건부이첩이 필요하나, 다른 수사기관과의 협력적 관계 구축 등을 위해 그동안 검찰과 갈등 요인이 된 조건부이첩 문제는 조건부이첩을 명문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이나 향후 사법부의 판단 등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공수처장이 입건 여부 결정하는 '선별 입건' 제도 폐지… 고소·고발 사건 바로 공제번호 부여
한편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의 원인이 됐던 ‘선별 입건’ 제도도 폐지된다. 지금까지 공수처는 접수된 사건을 조사분석 단계를 거쳐 처장이 직접 입건 여부를 결정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공수처가 야당 대선후보였던 윤 당선인과 관련된 사건을 4건이나 입건하면서 편향성 시비가 일기도 했다. 개정 규칙은 검찰이나 경찰과 마찬가지로 모든 고소·고발 사건이 접수와 동시에 자동으로 입건되도록 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21일 1주년 기념식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고 미흡했던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면서 중립성·독립성 논란이 있는 선별 입건 제도를 개정해 입건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고소·고발 사건을 예로 들면 지금까지는 고소·고발장이 접수되면 일단 ‘수리사건’으로 수리해 조사분석담당 검사에게 배당돼 왔다. 그리고 조사분석담당 검사가 기초조사 및 분석 후 입건을 결정한 사건에 대해서만 새롭게 공제번호를 부여해 수사부 검사에게 배당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고소·고발장이 접수되면 수사 개시의 필요성 유무에 대한 별도의 판단 없이 곧바로 공제번호가 부여된다.
수사·기소분리사건 결정 제도 도입
개정 규칙에 따라 수사·기소분리사건 결정 제도가 도입돼 공소부 부담이 완화되고 처장이 지정한 사건의 경우에만 공소부가 사건의 종국처분에 관여하게 된다.
수사·기소분리사건이 아닌 일반사건의 경우 배당받아 수사를 담당한 수사처검사가 수사 종결 후 처장의 지휘·감독에 따라 공소제기 여부 등을 결정하도록 해 신속한 사건처리를 도모한다.
공수처는 현행 사건사무규칙에 따른 수사·기소 분리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위와 같이 다른 수사기관과 통일된 입건 시스템을 도입하면 공소담당검사의 부담이 지나치게 가중되고 효율적인 사건처리가 되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 하에 이 같은 제도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또 개정 규칙은 경찰이 판·검사 등을 수사할 때 신병 확보를 위한 체포·구속영장을 검찰이 아닌 공수처에 신청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 규칙 제25조 3항도 삭제했다. 역시 검찰이 반발했던 조항이다. 공수처는 다만 압수수색 영장이나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 등 수사를 위한 허가서는 현행 그대로 경찰이 공수처를 통해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수사권한 조정 불가피할 듯
한편 윤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공수처와 검찰의 수사권한 재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윤 당선인은 후보자 시절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한 공수처의 우선적 수사권을 규정한 공수처법 조항을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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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청법이나 공수처법 등 법률 개정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대통령령이나 법무부령 제정을 통해 검찰의 권한을 확대하거나 공수처 규칙이나 고시·훈령 등 개정을 통해 공수처의 권한을 재조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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