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의 택배노조]택배파업 52일째…대리점·기사 피해 막대(종합)
내 물건 언제쯤, 소비자 '답답'…매일 10억 손실, 기업 '울상'
대선 올라탄 '꼼수 집회'라는 지적
택배노조의 CJ대한통운 본사 점거 농성이 이어진 17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위반하는 재벌 CJ대한통운 규탄! 서비스연맹 노동안전보건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성기호 기자, 최대열 기자, 유현석 기자] 경기도에서 CJ대한통운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석형씨(52·가명)는 최근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의 파업으로 연말부터 설날까지 성수기의 배송 물량이 감소하면서 수익이 30% 이상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수익은 줄어드는데 고정비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 사무실 운영비를 비롯해 세무·인건비 등으로 나가는 금액이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김씨는 "인건비 부담이 가장 크다"면서 "택배기사의 노동 강도를 줄이기 위해 분류 인원을 충원했는데 물량이 줄어든 탓에 인건비 맞추기도 버겁다"고 하소연했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CJ대한통운 본부 파업이 50여일이 지나면서 회사 소속 대리점과 비노조원 택배기사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17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8일 시작된 택배노조 파업으로 대리점들이 적자에 시달리면서 폐업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종철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장은 "통상 11월부터 1월까지 10~15% 정도 수입이 늘어나는데 파업이 시작된 작년 연말부터 마이너스 상태"라면서 "올 1월에만 해도 전년 대비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비노조 택배기사들의 고충도 심각하다. 김슬기 비노조 택배연합 대표는 "파업 이후 거래처들이 이탈해서 물량이 적게 잡아도 30% 이상 빠졌다"고 주장했다.
불법적이고 명분 없는 파업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파업 참여로 소득이 줄어든 노조원들의 동요도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파업에 동참했던 1650여명의 노조원은 이날 현재 200여명이 이탈해 현업에 복귀한 것으로 조사됐다.
택배노조의 파업과 불법점거가 장기화하면서 사회 전반에 피해 및 혼란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일선에 있는 택배 대리점이나 불법점거 대상이 된 CJ대한통운은 물론 소비자, 중소형 화주까지 피해가 전방위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여기에 노-노 갈등으로 이어지면서 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있다. 중재해야 할 정부는 노사가 풀어갈 문제라며 수수방관하며 한 발 물러난 상태다. 정치권도 대통령 선거 국면을 맞아 자칫 표심을 잃을까 눈치만 보고 있는 등 택배 파업을 풀어갈 실타래가 여전히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이다. 노조 역시 출구전략에 대한 고민 없이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면서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본사 고객 이탈…정확한 피해 추산 못해= 택배노조의 파업 장기화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CJ대한통운이다. 특히 지난 10일 택배노조의 본사 점거로 피해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확한 피해액을 추산하기 어려운 상태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파업으로 인해 공백이 생긴 곳에 대응하기 위한 배송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으로 정확한 피해 규모가 집계가 안 되고 있다"면서 "대략적으로 하루 평균 10억원의 손실액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특히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고객사 이탈이다. 고객사의 택배사 변경은 그대로 본사와 대리점 및 택배기사의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쇼핑몰들은 공지를 통해 택배사를 CJ대한통운에서 다른 곳으로 변경한다고 공지를 내놓고 있다. 대리점 연합회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이 아닌 다른 곳으로 물건을 맡기기 시작하면 물량이 빠지게 되는데 이는 노조가 다시 돌아와서 배송을 한다고 해도 복구가 되지 않는다"며 "이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출혈들이 있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비자들도 여전히 배송 지연에 따른 불편을 호소한다. 현재 CJ대한통운 노조원은 약 2500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집중적으로 있는 경기 성남시의 분당구와 수정구를 비롯해 광주, 창원, 경주, 포항, 울산 등은 배송이 최대 1~2주 정도 미뤄지고 있는 상태다.
노조와 비노조 간의 대립도 첨예하게 흘러가고 있다. 전국 비노조 택배기사 연합회는 지난 13일 집회를 열고 ‘명분 없는 파업으로 비노조 기사 죽어간다’ ‘고객 물건 볼모 삼는 노조, 일할 권리 자유 빼앗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파업 철회를 주장했다. 불법 점거 후 여론이 악화되면서 파업에 참가하는 노조원 내부 와해 움직임도 나온다. 기존 파업에 참가했던 인원은 1650명이었으나 이날 기준 1450명으로 줄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물량이 감소하면서 소득도 줄어서 최근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비노조 택배기사들도 늘고 있다"며 "우리가 진짜 생계형인데 일자리를 잃게 될 처지"라고 읍소했다.
◇"택배기사 과로사 막자" 취지 사라져= 문제는 두 달여를 맞은 택배파업을 해결할 창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번 파업과 본사 불법 점거 사태는 표면적으로는 택배업무 종사자의 과도한 노동을 막기 위해 마련된 사회적 합의를 둘러싸고 노조와 회사 간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불거졌다. 불법점거 후 CJ그룹 회장의 자택 앞에서 집회를 하며 요구서한을 전달하는 등 당초 갈등의 배경이 됐던 택배기사의 과로문제 해결과는 전혀 상관없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오는 21일부터는 롯데·한진 등 다른 택배사 조합원까지 가세한 총파업을 예고했다.
업계에서는 극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배경으로 2017년 11월 정부가 택배노조를 인정한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본다. 택배노조 조합원인 기사의 경우 개인사업자임에도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이 아닌 노조법상 근로자로 보고 노조설립을 가능케 했다. 당시에도 택배가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터라 노조 입김이 거세져 단체행동에 나설 경우 파급력이 클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현행 법률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도 크다. 노조법에서는 사용자가 여럿이거나 택배기사 같은 특수고용직에 대해선 교섭절차나 파업규정이 없다. 앞서 지난해 6월 중앙노동위원회가 CJ대한통운을 대리점주와 함께 공동사용자로 인정했으나 회사는 행정소송을 제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CJ대한통운이 노조에 잘못 찍히면서 집중 ‘타깃’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토요일 근무 제외도 주요 쟁점으로 알려졌다. 당초 CJ대한통운은 노조의 의견대로 토요일 근무를 빼는 대신 다른 인력들을 충원해서 해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노조가 여기에 반대를 하면서 공격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토요일 근무가 빠지면 자기들의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반감으로 CJ대한통운을 대상으로 파업이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거 결합한 꼼수 집회=특히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 본부가 일주일째 본사 점거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선거 유세차량을 동원한 사상 초유의 집회까지 이어지고 있다. 택배업계와 CJ대한통운 측은 ‘꼼수 집회’라는 비판이 거세지만 노조는 정당한 행위라며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5일 택배노조가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김재연 진보당 대통령선거 후보의 선거 출정식이 열렸다. 택배노조는 지난해 12월28일 파업을 시작한 파업을 52일째 이어가고 있으며 이달 10일엔 본사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문제는 택배노조의 집회가 대선 선거운동와 결합해 방역치침을 교묘하게 회피했다는 것이다. 이날 집회는 김 후보의 선거 유세 형식으로 진행돼 방역지침에 정해진 집회·시위 제한 인원(299명)을 넘겨 조합원 700여 명이 참여할 수 있었다. 방역지침을 보면 선거 유세 참여 인원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김 후보는 선거 유세 차량 1대를 택배노조 집회에 지원했고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택배노조원은 ‘선거사무원’이라 적힌 표찰을 목에 걸고 집회에 참여했다.
택배노조는 이날부터 본사 앞에서 ‘무기한 상경 투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참여 인원을 수천명까지 늘린다는 입장이지만 이 경우에도 선거 유세차 한대만 있다면 집회가 가능한 상황이다.
‘꼼수 집회’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이를 막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실제 이날 집회와 관련 경찰이 출동해 해산을 권고했지만, 선거 유세라는 노조의 주장에 해산 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경찰 병력 일부가 철수하기도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유세차량을 통한 선거 운동은 후보가 없어도 선거운동원의 연설이 가능하다"며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선거운동원은 누구나 연단에서 연설할 수 있다"고 전했다.
느닷없이 일터를 빼앗긴 CJ대한통운 임직원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한 직원은 "업무 처리를 사무실에서 할 수 없어 카페 등지를 전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선 투표 전날까지 대규모 집회가 계속 되는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암담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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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꼼수 집회’에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 목소리도 높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본사 점거가 불법 쟁의로 규정하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고용주가 현재 점거된 CJ대한통운 본사인지 아니면 대리점인지를 놓고 고용부와 중앙노동위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어서다. 경찰은 이번 점거가 불법쟁의로 규정되야 개입할 수 있다며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대선과 맞물려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정치권도 대선 표를 의식해 관련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어 더욱 답답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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