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16년 전 처음 뉴욕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뉴욕의 지하철은 익히 악명 높았다. 커다란 쥐가 역 안을 뛰어다니는 게 일상일 정도로 낡고 지저분한 탓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뉴욕 지하철은 이제 ‘지저분철’이라는 악명에 더해 ‘두려움의 공간’이 된 듯하다. 맨해튼에 숙소를 구했다고 하면 국적을 막론하고 10명 중 9명은 "가급적 지하철을 타지 말고, 조심하라"고 입을 모은다.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뉴요커들은 몇 가지 팁도 소개했다. ‘장식용’ 무선 이어폰을 귀에 ‘살짝’ 끼고, 아무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열차를 기다릴 땐 벽 또는 계단쪽에 바짝 붙어 있는다. 혹시나 뒤에서 누군가 나를 기습해 선로로 떠미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뉴요커들은 24시간 운영되는 지하철을 ‘뉴욕의 혈관’이라고 정의한다. 1904년 개통된 뉴욕 지하철은 월스트리트에 근무하는 고액 연봉자부터 일용직 근로자까지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대중교통 시스템의 대표격이다. 하지만 이제는 현지인에게도 ‘위태롭고, 예측할 수 없고, 위험한 것’이 됐다. 브롱크스에 거주 중인 30대 여성 라니아는 "지하철을 타는 뉴요커들은 노숙자나 정신이상자, 범죄자가 언제든 자신에게 위험을 끼칠 수 있음을 안다"고 말했다.
지난달 타임스스퀘어역 플랫폼에서 정신 이상 노숙자에게 떠밀려 사망한 아시아계 여성 미셸 고의 뉴스는 현지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이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한 남성이 60대 미국인 남성을 선로로 미는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에도 지하철을 탄 한 여성이 ‘시간을 내달라’고 접근한 남성을 평소처럼 무시했다가 칼에 찔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뉴욕경찰(NYPD)에 따르면 지난해 뉴욕 지하철에서 발생한 중범죄는 총 461건. 이 가운데 살인 사건은 총 8건으로 25년 만에 최고치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거치며 뉴욕 내 지하철 관련 사건 사고는 급증했다. 올 들어 1월 첫 2주간 보고된 지하철 관련 범죄는 96건으로 1년 전보다 무려 65% 늘었다. 뉴욕 지하철을 운영하는 뉴욕광역교통국(MTA)의 얀노 리버 최고경영자는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승객들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다. 늘어난 노숙자, 범죄에 대한 탑승객들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약 1600명의 노숙자가 뉴욕 지하철에 사실상 상주하고 있다고 추산한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이 최근 지하철 안전을 우선 순위로 삼겠다며 경찰 투입 등을 약속했지만 변화를 기대하는 뉴요커는 거의 없어 보인다. 미국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사라 조는 "그 이유는 분명하다"며 아시아계 여성을 선로로 밀어 죽인 노숙자 마셜 사이먼(61)을 언급했다. 20년가량 노숙 생활을 한 사이먼은 이미 승객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존재였지만 경찰은 범죄를 저지르기 전이라는 이유로 그간 그의 행동에 개입하지 않았다. 결국 NYPD가 노숙자나 정신이상자의 위험 행동을 사전부터 저지하고 나설지 의문이라는 설명이다. 주 정부, 국가 차원의 치안·복지 정책과 맞물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출신인 애덤스 시장은 취임 직후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앞서 그는 ‘첫 임기에서의 성공을 정의하라’는 질문에 "공공안전(Public safety)"이라고 답했다. 공공안전이 곧 "도시 번영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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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이후 그라운드 제로를 기획한 건축가 겸 도시계획개발자 고(故) 알렉산더 가빈 역시 과거 테러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지하철이 움직여야 도시가 움직인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뉴욕의 혈관인 지하철을 안심하고 탈 수 있도록 하는 것. 마스크를 벗고 재택 근무를 풀고 있는 뉴욕이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을 넘어, 도시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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