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을 전후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화제(話題)가 나왔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21년 코로나19 둘 중 무엇이 더 충격적인가였다. 갑론을박이 벌어져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IMF는 국가와 기업, 가정, 개인 모두에 근본적인(먹고 사는 문제)충격을 줬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당시 주변에서는 출근을 앞두고 채용하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거나 입사해야 할 회사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 있었다. ‘부양가족이 없다’며 입사 얼마 안돼 잘린 이도 있었다. 직장에서 잘린 아버지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자식들이 한겨울 평일 낮 집에서 있는 모습을 떠올린 이도 있었다.


IMF를 겪은 세대는 한보, 삼미, 진로, 쌍방울, 기아 등 대기업과 은행(26개 시중은행 중 16개가 무너졌다),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무너지는 걸 목격했다. 명예퇴직으로 떠나는 이들이 눈물로 써내려간 고별사 영상인 제일은행 ‘눈물의 비디오‘가 전 국민을 울렸다. IMF로 길바닥에 내몰린 이들은 하릴없이 산으로, 공원으로 향했다. 자발적, 타발적 노숙자들이 넘쳐났다. 무료급식소 앞의 긴 줄은 일상의 모습이 됐다. 극단적 선택(자살)도 늘었다.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이 1997년 13.명에서 1998년 18.4명(8622명)으로 급등했다. (1999년 15.0명·2000년 13.6명으로 줄었다)

코로나19의 충격은 IMF와는 다르다. 감염병과 경제·사회적 충격은 어찌보면 탈동조화 또는 비동조화의 길을 가는 듯하다. ‘누구나 코로나에 걸릴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는 같지만 ‘나라 전체가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적다. 대신 잇단 대유행과 거리두기로 전시·공연·영화·실내체육시설·프로스포츠·숙박·여행 등 내수업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이 무너졌다. 코로나학번(입학·졸업)은 학업도, 취업도,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금모으기 운동으로 상징된 IMF는 3년 8개월 만에 졸업했지만 코로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IMF와 코로나 극복의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바로 국민의 협조, 곧 민의, 민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1998년 2월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올 한 해 동안 물가는 오르고 실업은 늘어날 것입니다. 소득은 떨어지고 기업의 도산은 속출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물가를 잡고 실업을 줄이겠다가 아니었다. 다가올 엄혹한 현실을 숨기지 않는 솔직한 말이었다. 취임사 도중 몇 차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 연설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평가는 지금까지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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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IMF와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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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K-방역’을 자랑하면 그 이후 다시 확진자 급증-거리두기 강화라는 기이한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온 자영업단체들이 대규모 집회로 들고 일어나고 집단휴업이라는 카드까지 꺼내놓고 있다. 한 자영업단체는 코로나19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만 24명에 이른다고 했다. 정부는 얼마전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내놓으면서 ‘위기를 넘어 완전한 경제 정상화’를 목표로 짰다고 했다. 경제정책 뱡향이 낙관적인 경향을 보인다해도 밑바닥 삶이 무너지는 상황과 동떨어져 있다. 희망고문보다는 현실직시가 먼저다.


이경호 사회부장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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