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무저갱에 빠진 검찰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겉돌기만 하던 검찰 수사가 동력을 잃었다. 사태 초기에 확인했어야 할 윗선은 찔러보지도 못하고 주변인만 털다 벌어진 일이다.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현 포천도시공사 사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난항에 빠진 성남시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검찰이 신속하게 수사했다면 사업자들과 윗선 규명은 물론 극단적 선택도 막을 수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서관에서는 유 전 본부장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열려야했다. 대장동 민간사업자 개입부터 사장 사퇴 종용에 이어 뒷돈 의혹까지 받던 그를 통해 검찰의 윗선 수사는 잠시나마 기대됐었다.
유 전 본부장은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과 함께 대장동 민관 합동 개발을 담당했다. ‘유원(유1)’이라는 유동규 전 본부장에 이어 ‘유투(유2)’로 불릴 정도로 성남도개공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민간사업사 선정 과정에 참여했고 황무성 전 성남도개공 사장을 쫒아내는데 개입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런 핵심 인물을 수사 끝 선에 배치하더니 구속영장은 개인비리로 엮었다. 민간사업자에게 뒷돈을 받은 혐의로 신병을 확보해 나머지 의혹들도 확인하려 했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에 대한 수사를 한 달만 서둘렀다면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아쉬운 대목이다.
검찰은 이른바 ‘4인방’으로 불린 유동규·김만배·남욱·정영학을 모두 재판에 넘기면서 최종 책임자인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물론 측근 수사는 단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았다. 유 전 본부장의 ‘사퇴강요 녹취록’이 공개됐을 당시의 윗선 수사 기대감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녹취록에 수차례 등장한 인물은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석 달밖에 남지 않은 공소시효는 이제 의미조차 없어졌다.
유 전 본부장의 죽음으로 검찰 수사는 다시 무저갱(無低坑,·바닥이 없는 깊은 구덩이)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사장 사퇴 종용 의혹과 한강유역환경청 로비 명목으로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로부터 받았다는 2억원의 진실은 확인할 길이 반으로 줄었다.
변수가 없지는 않다. 유 전 본부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누구와 어떤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확인되면 국면이 전환된다. 유동규 전 본부장 역시 ‘마지막 통화자’를 놓고 추가 의혹을 받은 점을 감안하면 그의 휴대전화 확보는 더 절실한 상황이다.
검찰이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있다. 여론에 등 떠밀려 수사에 나서고 휴대전화 압수수색 실패, 늦장 압수수색, 부실영장 청구, 코로나19 집단감염 등 갖은 논란을 끊임없이 일으켰던 탓이다. 부실수사 지적을 받던 수사기관이 석 달 열흘만에 맥을 정확히 짚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특검 수사의 필요성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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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옹송그리고 있을 시간은 없다. ‘4인방’ 재판에서는 이제 그들이 선임한 40명이 넘는 변호인과 다퉈야하고 윗선 수사 움직임에 감읍해줄 국민은 더 이상 없다. 특검에 바통을 넘기더라도 대장동 사태를 찜찜하게 마무리해서는 안된다. 유 전 본부장의 극단적 선택에도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전 국민들에게 박탈감을 안긴 대장동 사태에 대해 수사기관으로서 마지막까지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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