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생지옥 탈출에 필요한 이성과 사랑
넷플릭스 '지옥' 사건사고·각종 부패 속 불안감 악용 그려
사이비종교가 만든 혐오·절망의 사회…두려움 떨쳐내고 희망으로
청년들이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눈다. 화두는 죽음을 예고하는 고지(告知). 스마트폰으로 정진수(유아인) 새진리회 의장의 강연을 시청한다. "천사가 나타나 예언을 합니다. 먼저 예언을 듣는 수취인의 이름을 이야기하게 돼요. 누구누구 당신은 몇 날 몇 시에 죽는다. 그리고 지옥에 간다. 그리고 그 시간이 되면 그 예언은 지옥의 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어." "이 사람 유튜브 채널 가면 증거 영상도 엄청 많거든."
건너편 탁자에서 이야기를 엿듣던 남성은 초조하다. 식은땀까지 흘리며 연신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두 시. 천둥소리가 지축을 흔들자 얼굴은 사색이 된다. 이내 유리 벽을 부수고 카페에 난입하는 괴생물체들. 다짜고짜 남성을 마구 구타한다. 도망치려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온몸을 갈기갈기 찢더니 열기를 발산해 태워 죽인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 사람들은 두려움에 와들와들 떤다. 정진수 의장은 고지받은 사람이 죄인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이 죄를 짓고자 한 의도를 부정하고 수치심, 죄의식, 속죄, 참회를 망각해 신이 개입하기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신이 초월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 전반에 걸쳐 존재했습니다. (…) 이제 우리에게 악을 방치할 권리는 사라졌고, 선을 행할 의무만 남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알 수 없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그 시간을 예고한다는 설정으로 우리 사회의 불안을 이야기한다. 극단적 배타주의와 독선주의다. 새진리회는 특정 사건을 왜곡하고 과장해 정당성을 확보한다. 고지받은 사람에게 참회를 요구해 혐오와 절망을 키우고 사회적 혼란을 가중한다.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역사적으로 이 같은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선동 주체는 주로 정치 세력이었다. 1923년 9월 일본 간토·시즈오카·야마나시에서 일어난 관동대지진이 대표적인 예다. 12만 가구의 집이 무너지고 45만 가구가 타버렸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는 약 40만 명. 야마모토 내각은 국민의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조직적으로 퍼뜨렸다. 격분한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을 구타하거나 학살했다. 사망자는 2000~6000명으로 추정된다.
불가항력적 두려움은 언제든 찾아온다. 자연재해만이 아니다. 각종 사건 사고와 부패 현상을 보노라면 불길함 예감이 밀려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움츠러들면 모든 게 마비되고 만다. 연상호 감독은 무뎌진 감각을 되살릴 방도로 크게 두 가지를 내세운다. 현실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냉철한 이성과 그지없는 사랑이다. 각각 민혜진 변호사(김현주)와 배영재(박정민)·송소현(원진아) 부부를 통해 나타낸다. 하나같이 두려움을 떨쳐내며 희망을 가리킨다. 다만 성숙하는 과정은 생략돼 있다. 처음부터 정의롭거나 모성애 같은 본능에 철저히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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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2006)'은 이성과 사랑의 회복을 능숙하게 그린 수작이다. 도입에서 나타나는 세계는 '지옥'보다 더하다. 폭동과 테러로 무너진 정부들. 그나마 유지된 영국마저 비정상이다. 난민을 수용소에 가두고 고령자에게 자살 약을 나눠준다. 아기마저 18년째 태어나지 않아 모두가 무력감에 빠져있다. 테오(클라이브 오웬)는 기적적으로 임신한 소녀 키(클레어 홉 애쉬티)를 만나면서 마음을 고쳐먹는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까지 가로지르며 키와 아기를 미래호에 데려다준다. 잠자던 이성과 사랑은 아기 울음소리로 깨어난다. 두려움을 떨치는 용기로 이어져 희망에 가닿는다. 그 간절함이 담긴 당부는 '지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기와 떨어지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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