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아침 1교시 수업에 한 학생이 번번이 지각한다. 밤샘 알바 마친 후 쪽잠 자고 오느라 늦는다는 딱한 사정이다. 교수는 이 학생의 지각을 정시출석으로 처리할까 잠시 고심해본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우선, 출석관리란 개인 사정이 무엇이든 수강생 각자가 수업시간 준수라는 약정을 얼마나 성실하게 지키는지에 대한 신뢰 평가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사례가 알려지면 지각생이 우르르 늘면서 수강질서가 이내 흐트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나름의 이유로 지각한 후 예외 인정을 요구할 테니까.
마침내 교수는 이 학생이 차제에 밤샘 알바를 그만둘 수 있도록 장학생으로 추천한다. 하지만 대학당국은 난색을 표한다. 코로나19에도 대면강의에 동참해준 재학생 모두를 위로하기 위해 가용 장학재원을 균등 지급할 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필자의 가상일 뿐이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지원에 써야 할 장학금을 모든 학생에게 용돈처럼 나눠주는 대학은 세상에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엔 그와 비슷한 일들이 버젓이 벌어진다. 예를 들어 최근 대출규제로 고신용자가 저신용자보다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게 됐다. 저신용자에겐 저리자금을 공급하라고 외쳐온 정치인들 탓에 생겨난 고신용자 역차별 현상이다. 앞의 가상 예로 보자면 정시출석한 학생이 지각으로, 지각생이 정시출석으로 각각 처리된 셈이다. 성실하게 원리금을 상환할수록 불리해지는데 누가 굳이 자신의 신용을 지키려 할까. 이대로 간다면 신용 경시 풍조의 확산으로 금융질서 문란과 산업 위축은 시간문제다.
또 다른 예로 코로나19 시대의 모든 국민을 위로한다며 재난지원금의 균등 지급을 강변해온 정치인이 인기다. 긴 동안 정부의 방역대책을 준수하느라 집중적으로 피해 본 계층(자영업자)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필요한 지원에는 정작 인색하면서, 나라곳간을 작년처럼 통 크게 다시 비워보자는 것이 전국민 재난지원금 주장이다. 혈세 낭비의 지름길이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 전반과 국민의 일상에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 넘쳐난다. 정치인들은 국민 각 계층의 곤경을 남들 탓으로 교묘히 돌리곤 국가가 돌봐주겠노라 공언한다. 이에, 서민과 엘리트, 좌와 우, 청년과 노인 등 다양한 국민 분열이 공공연히 조장된다. 정부지원에 기대는 국민이 늘면서 국가개입은 더욱 당연시되고, 여야 정치인들은 목전의 표에 생사를 건다. 여기에 소득주도성장·부동산정책의 대실패까지 보태져, 생산활동엔 아랑곳없이 대박만 좇아 몰려다니게 된 적잖은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차라리 현명해 보일 정도다. 사회적 가치관의 심각한 혼돈상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일찍이 1993년, 존 메이저(J. Major) 전 영국총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s)"고 호소했었다. 이때 '기본'에는 "자기규율과 법률 존중", "타인 배려", 그리고 "나와 내 가족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지되 이를 국가에 미루지 않는 것"이 포함된다. 사실, 그의 이런 호소는 당시 영국민보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 훨씬 더 절실하다.
대선이 4개월 남았다. 그 결과가 어떻든, 이젠 우리 사회가 그간의 방황을 접을 때도 됐다. 더 늦기 전에 온 국민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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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범 경상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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