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어린시절 모습은 어떨까? '쁘띠 마망' [강주희의 영상프리즘]
엄마와 친구가 된다면?
셀린 시아마 감독이 전하는 '엄마와 딸' 이야기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엄마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에,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셀린 시아마 감독의 '쁘띠 마망'은 시간을 초월한 공간에서 만난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들은 그 공간에서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잠시 내려놓고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하지 못했던, 마음에 담아둔 말들을 나눈다. 이 대화는 두 사람 사이의 내밀한 대화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 뒤에 생겨난 상실의 빈자리를 메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빈자리를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시공간 속에서 생겨난 특별한 감정으로 채우길 시도한다.
영화는 8살 넬리가 요양원에서 외할머니의 죽음을 마주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여러 차례 이곳에 와본 적 있는 듯, 넬리는 할머니와 함께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노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물건이 치워진 할머니의 텅 빈 병실에는 넬리의 엄마인 마리옹이 창밖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다. 방금 자신의 엄마를 떠나보낸 마리옹의 뒷모습에선 슬픔이 배어 나오고, 넬리는 그런 마리옹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다.
넬리에게 마리옹은 수수께끼의 존재다. 항상 다정한 엄마지만 언제나 말이 없고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슬픔에 젖어있다는 것은 알지만, 마리옹은 울음을 터뜨리지도 않는다. 알 수 없는 마리옹의 표정 뒤에 숨겨진 감정이 무엇인지 넬리는 궁금해하고, 또 그런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어 한다.
할머니의 유품 정리를 위해 그녀가 살았던 숲속의 집에 온 다음 날, 마리옹은 어딘가로 떠나고 넬리는 아빠와 둘이 남는다. 그리고 넬리는 마리옹이 어린 시절 오두막을 만들었다는 집 근처 숲속에서 자신 또래의 여자아이를 마주친다. 그 아이의 이름 역시 마리옹. 자신과 어딘가 많이 닮은 그 아이가 어린 시절 엄마임을 넬리는 곧바로 깨닫는다. 그리고 넬리와 어린 마리옹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영화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딸과 엄마가 만난다는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가깝고도 낯선 가족이란 관계의 의미를 조명한다. 친구가 된 넬리와 어린 마리옹은 여느 또래들이 그렇듯 함께 오두막을 만들고, 보드게임을 하면서 빠르게 친해진다. 그러다 넬리는 어린 마리옹에게 자신이 딸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어린 마리옹은 놀라지도 않고 담담하게 묻는다. "미래에서 왔어?" "너와 알게 돼서 기뻐."
넬리는 어린 마리옹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마리옹이 코코아 가루를 뭉쳐서 먹는 걸 좋아한다는 사소한 취향부터 원래는 배우가 꿈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할머니처럼 다리가 아프게 되는 유전병을 막기 위해 수술을 앞두고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도.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고백하는 일은 이 영화의 주요한 테마이기도 하다. 어린 넬리가 보기에 어른들은 자신과 달리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어 보이고, 어떤 문제도 잘 해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넬리는 어린 마리옹과 헤어진 뒤 집에 돌아와 아빠에게 문득 어린 시절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를 묻는다. 아빠는 넬리에게 귓속말로 "난 내 아빠가 무서웠어"라고 속삭인다. 넬리는 어른들도 자신처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두려움과 무서움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된다.
"다음번은 없어." 할머니 집의 물건 정리가 끝난 뒤 이제 이곳을 떠나자는 아빠에게 넬리는 어린 마리옹과 하룻밤을 더 보내게 해달라고 부탁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에 넬리는 어린 마리옹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두려움을 털어놓는다. "엄마는 자주 우울해. 사는 게 별로인가 봐" "가끔 나 때문인 것 같아." 넬리의 말에 어린 마리옹은 "너 때문에 슬픈 건 아냐" "넌 날 슬프게 하지 않았어"라고 위로한다.
영화는 마리옹이 떠난 동안 넬리가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지만, 한편으론 현재의 마리옹이 겪는 감정의 파장을 이야기한다. 넬리가 마리옹의 부재, 할머니의 죽음과 이별로 인해 상실감을 느끼고 있듯, 말없이 어딘가로 떠난 마리옹 역시 넬리와 돌아가신 엄마의 빈자리를 견디고 있는 중일 것이다. 넬리는 이제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몸은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들을 하나로 이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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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 마망'은 판타지적 요소를 영화의 주축이 되는 설정으로 가져오면서도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할 어떤 특별한 장치를 묘사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넬리와 어린 마리옹이 만나게 되는 계기는 숲속을 산책하다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런 영화적 묘사에는 서로의 두려움을 말하고 위로하는 일에 어떤 특별한 계기나 마법 같은 순간은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영화는 "다음번은 없다"는 넬리의 대사를 통해서 지금이라도 당장 그런 순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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