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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아빠가 됐습니다" 고졸 흙수저 아들의 눈물…'영 케어러'를 아시나요

최종수정 2021.10.20 14:08 기사입력 2021.10.20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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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바쳐 가족 돌보는 청년 부양 의무자들
해외선 '영 케어러'로 규정…지원 정책 등 추진
국내선 실태조사도 제대로 안 된 실정
"실태조사 실시하고 돌봄서비스 수요 파악 시급"

최근 젊은 나이에 부모 부양을 떠안게 된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저서들이 출간돼 주목 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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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나는 병원에서는 '보호자'로, 공공 기관에서는 '대리자'이거나 '부양 의무자'로 불렸다. 주위에서는 '효자'로 부르기도 했다. 어느새 2인분의 삶을 담당하는 '가장'이 됐고, 돈·일·질병·돌봄이 나를 압도하거나 초과했다."


지난 2019년 발매된 조기현 작가의 수기 '아빠의 아빠가 됐다'에 기록된 조 작가의 심정이다. 조 작가는 20세라는 젊은 나이부터 치매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돌보며 약 9년을 버텨왔다. 그는 아버지를 뒷바라지하느라 학업, 자기계발 등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모두 포기한 채 '고졸 흙수저 부양 의무자'로 살아야만 했다고 고백한다.

몸져누운 부모를 돌보느라 청춘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 부양 의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령화·저출산 사회가 가속화되며 젊은 나이부터 부모를 돌보는 청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를 경험했던 일본 및 서구 선진국들은 이들을 '영 케어러(young carer·젊은 부양자)'로 표기하며 각종 지원책에 힘쓰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어린 나이부터 가족 구성원을 부양하게 된 고충을 책으로 펴낸 사례는 조 작가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조모를 돌보는 과정을 수기로 엮은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윤이재)가 출간됐다. 지난 8일에는 KBS 1TV '시사 직격'에서 청년 부양 의무자들의 사례를 집중 조명하는 방송을 내보내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부모 간병의 짐을 떠안는 청년 수가 늘어나는 것은 성큼 다가온 고령화·저출산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부모가 아프면 여러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돌봄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한두명의 자녀가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또 첫 아이를 가지는 부모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다 보니, 부양 의무자가 되는 자녀의 연령은 오히려 낮아지게 된다.

국내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를 경험한 일본의 경우, 고령화 사회와 청년 부양 의무자 사이의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보인다. 지난 9월 일본 사이타마현이 현지 가계를 실태 조사한 결과, 시내 중학생 중 약 4.5%가 가족의 돌봄을 담당하는 부양 의무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다 일찍이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 사이타마현은 현지 중학생 중 약 4.5%가 가족 돌봄을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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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보니 일본 및 서구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청년 간병자를 집중적으로 관리해 왔다. 일례로 영국에서는 가족을 부양하는 18세 이하 청소년들을 '영 케어러'라고 칭한다. 지난 2014년에는 '아동가족법'을 통해 영 케어러의 법적 정의를 명시하고, 지난 2019년부터 보조금 지원 등 각종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영국과 같은 영연방 소속 국가인 호주에서는 25세 이하 청년들까지 영 케어러로 포함하고 있다.


이들 복지 선진국은 이미 보건당국에서 영 케어러를 지원하고 있다.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care service·NHS)는 공식 홈페이지에 영 케어러들의 권리와 혜택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설명문을 보면, "영 케어러들은 지역 정부로부터 사회복지사 방문 등 도움을 요구할 수 있다"며 "사회복지사들은 부양 대상뿐 아니라, 당신의 교육과 직무 훈련, 여가의 기회와 미래에 대해서도 도움을 준다"라고 규정한다.


지난해 기준 국가 평균 연령 48.4세로 이미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도 영 케어러에 대한 복지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영 케어러들에게 가사노동 지원, 간병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온라인 상담도 제공한다.


선진국들과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 제대로 된 가계 실태조사조차 진행되지 않아, 정확한 영 케어러 숫자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부모 부양을 가족이 아닌 '사회 공동 책임'으로 보는 시선이 점차 늘고 있어, 영 케어러 지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추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계청이 지난 2002년부터 2018년까지 한 사회조사를 보면, '부모부양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변화 추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난 2002년에는 부양 주체를 '가족'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의 70.7%로 과반 이상에 달했지만, 가장 최근인 2018년 조사에서는 26.7%까지 떨어졌다. 반면 사회·기타 등이 부양을 담당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54.0%에 달했다. 돌봄을 '공적 영역'으로 인식하는 국민이 많아진 셈이다.


지난 2014년 '아동가족법'을 통해 영 케어러의 법적 정의를 명시한 영국 보건당국은 이미 관련 지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사진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영 케어러 권리 및 혜택 설명문. / 사진=NHS 공식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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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또한 국가가 가족 부양을 일부 책임질 필요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치매 질환을 앓던 할머니를 모셔본 경험이 있다는 20대 직장인 A씨는 "취직 준비와 할머니 돌봄을 동시에 감당했는데, 공부하면서 병수발까지 드느라 체력이 남아나지 않았다. 그나마 집 안에 시간이 남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으니 군말 없이 한 것"이라며 "우리 가족보다 형편이 훨씬 안 좋은 가정도 많을 텐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국가가 나서서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회사원 B(31)씨는 "20대는 학업, 스펙 쌓기 등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가족을 돌보는 데 다 허비하면 어떻게 일자리를 구하겠나"라며 "돌봄도 중요한 사회적 안전망의 일부로 생각하고 국가가 나서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정치권에서도 영 케어러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국내에선 영 케어러에 대한 법적 정의, 지원 근거 등이 전무하고 이로 인해 실태조사나 통계 집계 등 기초적인 현황파악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우리 인구의 절반 수준인 호주는 실태조사 결과 25만여명의 영케어러 발굴 사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정부도 영 케어러에 대한 지원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라며 "보건복지부와 관계부처 합동으로 영 케어러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동시에 간병·가사도움 등 특성에 맞는 돌봄서비스 수요를 파악해 지원하는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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