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호시우행(虎視牛行)과 공수처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호시우행(虎視牛行·호랑이 같은 눈빛을 띠고 소처럼 나아간다)의 자세로 직무에 매진하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은 공수처 출범 후 첫 임명된 검사들에게 '호시우행'이라는 사자성어를 건넸다. 인력난에 따른 수사력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감안해 뚝심을 갖자는 의미에서다.
출범 8개월을 앞둔 지금, 공수처는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여권 인사 '고발사주' 의혹이 대선판을 흔드는 가운데 공수처 움직임 하나에 정치적 파장은 더 확산되고 있다.
'고발사주'인지 '공작'인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지만 공수처의 이례적인 수사 속도에는 모두가 놀랐다.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던 '1호 수사'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특별채용 부당지시 의혹 사건이 20일을 넘어서야 압수수색이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공수처의 이번 움직임은 소보다는 범에 가깝다.
이유는 간단했지만 설명은 부족했다. 공수처는 이 사건의 특성상 증거 확보가 시급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훼손 우려가 크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언론의 요구에 따라 강제 수사했다'는 취지의 추가 답변은 스스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김 처장은 지난 6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공수처는 고소·고발장이 접수돼도 바로 입건되지 않고 조사·분석을 거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공수처는 윤 전 총장이 '고발사주' 의혹에 가담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했다. 고발장 접수 나흘만에 강제수사에 나설 정도로 조사·분석까지 모두 마쳤다면 모를 일이다.
논란의 핵심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영장을 집행하는 수사기관의 합법적 수사활동을 방해한 명백한 범법 행위'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진실공방이 벌어지게 된 빌미를 제공했다.
공수처는 사무실 압수수색 전 김 의원 자택 앞에서 김 의원에게 의원회관 사무실과 부속실까지 압수수색 범위에 포함된 영장을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 의원은 "의원실 압수수색을 몰랐다"며 강력 반발했다. 공수처의 해명대로라면 절차적 문제는 없지만 법조계에서는 당사자 등 입회하에 압수수색을 진행하지 않은 점, 압수수색 당시 대리인을 통한 추가 확인 등 강제수사의 기초 절차를 놓친 점을 아쉽게 꼽고 있다.
사흘 뒤 재개한 압수수색마저 빈손으로 끝났다. 앞선 압수수색 당시 논란의 대상이 됐던 보좌진 PC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고 키워드 검색을 통한 자료 추출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첫 압수수색 땐 공수처가 PC에서 '조국', '정경심', '미애', '오수'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면서 '위법한 압수수색'이라는 반발을 산 바 있다.
소처럼 나아가겠다고 했지만 이번 사건을 대하는 공수처의 태도는 범과 같다. 암약하는 기관이 아닌 이상 예단을 갖고, 사실과 증거에 따라 철저하게 수사하지 않는다면 힐문하는 사람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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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은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대선 경선을 좌우할 중대 사건을 다루는 사안에 뛰어든 만큼 김 처장은 강조했던 중립성과 공정성을 국민에게 신속히 보여줘야 한다.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수사기관이 일으킨 논란'으로 마무리된다면 국민들은 면책 대신 금고아를 씌워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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