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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드는 오염방지시설 설치 대신 '도료'만 바꾸더니…피부질환과 싸우는 작업자들

최종수정 2021.08.04 16:54 기사입력 2021.08.0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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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제 도료’ 쓴 조선소 도장공장 노동자, 발진에 시달려

대기정화시설 비용 부담에 대형조선소, 도료 바꾸는 ‘꼼수’

금속노조, 대기오염 자체 잡아야 작업자·주민 모두에 건강

한 조선소 근로자가 무용제 도료로 도장 작업을 한 뒤 피부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지출처=금속노조]

한 조선소 근로자가 무용제 도료로 도장 작업을 한 뒤 피부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지출처=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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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영남취재본부 강샤론 기자] 조선소 도장 공장에서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대기오염방지시설’ 대신 도료를 바꿔 사용하면서 또다른 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노동자 사이에서 잇따라 발생한 피부발진 산업재해의 원인이 ‘무용제 도료’였다는 당국의 조사 결과가 최근 나왔다.

노동부가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현대중공업 등 노동자 1080명을 임시 건강진단한 결과 55명이 피부질환을 앓고 있었다.


177명에 대해서는 현재는 피부질환이 없지만, 무용제 도료를 취급할 때 피부질환 증상이 나타난 경험이 있어 추가 관찰이 필요하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노동계는 실제 피부질환 피해를 본 노동자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현대중공업뿐만 아니라 다른 조선소에서도 무용제 도료로 인한 발진 사례가 확인됐고, 이번 임시건강진단이 도장작업자에만 이뤄졌는데, 다른 업무를 맡은 노동자들도 간접적으로 무용제 도료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부질환의 주범으로 지목된 ‘무용제 도료’란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함량이 5% 이내인 도료를 뜻한다.


대기오염 및 환경오염을 줄이는 친환경 제품으로 꼽히지만, 품질 문제로 상용화되지 못해 그동안 유기용제 도료가 널리 쓰였다.


조선소 관계자들은 최근 조선소들이 무용제 도료 사용이 늘어난 배경을 정부의 규제 완화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2016년 대기환경보존법을 개정해 2018년부터 5만㎥ 이상 도장 공정이 있는 시설에 VOCs를 저감하는 대기오염방지시설을 설치하도록 했다.


2022년까지 이 시설의 설치를 완료토록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도장공장이 필수적인 조선소, 자동차 업체 등 사업장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비용 부담이 커진 기업들은 정부와 협상 끝에 2019년 4월 ‘조선산업 활력 제고 방안’을 마련했다.


그해 정부는 친환경 무용제 도료를 사용하면 미세먼지 주범인 휘발성유기화합물 배출량을 줄인 실적으로 인정해주기로 했고 지난해 4월부터 이를 반영한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이 시행됐다.


정부의 규제 완화에 현대중공업 등 대형 조선사들은 지난해 4월부터 현장에서 무용제 도료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친환경적이라는 이유로 이를 개발한 제조사나 이를 사용한 조선사, 사용을 장려한 정부 어느 누구도 유해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


조선소 현장에서 집단 발진 사태가 빚어질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은 것이다.


대형 조선사들은 대기오염방지시설 설치비보다 당장 저렴한 무용제 도료 사용 쪽을 선택했다.


안전성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무용제 도료를 앞다퉈 사용한 이유가 또 있었다.


대기환경보전법(시행규칙 제51조의3제2항)에 따라 휘발성유기화합물을 저감하는 대기오염방지시설을 2021년까지 80% 이상 의무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등 대형 조선사 시설 설치율은 30~4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들은 무용제 도료를 사용하겠다고 신고하고 도장공장 10동 중 7동은 저감시설 하나 없이 유해 물질을 배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조선사의 무용제 도료 사용량은 2020년 기준으로 2~5%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 내 근로자든 인근 주민이든 대기의 질 자체를 잡아주는 대기오염방지시설을 공장마다 설치하지 않아도 사용하는 도료의 숫자 맞추기나 눈속임에 따라 법적인 ‘무사통과’가 가능한 셈이다.


한 대형 조선소에서 20년간 도장일을 한 A씨는 대기업 봐주기라고 꼬집었다.


A씨는 “무용제 도료는 정작 선주사들도 원하지 않고 작업자들도 기피한다”며 “이는 대기오염방지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무단으로 오염물질을 방출하려는 대기업들의 꼼수에 길을 터준 것에 불가하다”고 말했다.


대기오염방지시설을 설치하자니 한꺼번에 많은 비용이 들고, 그걸 핑계로 현장 근로자나 선주사가 원치 않는 무용제 도료를 써 애초 정부가 정한 엄격한 기준을 허물어 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신 무용제 도료 사용으로 인한 ‘산업재해’는 고스란히 현장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는 꼴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VOCs는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주요 오염원으로 악취와 함께 폐암과 호흡기 질환, 신경계 장애를 일으키는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거제의 한 조선소 인근에 사는 주민 B씨는 “십수년 동안 무단으로 방출한 것도 모자라 대기업이 주민건강을 위협하는데도 투자 비용을 아끼려고 유해화학물질을 무단으로 배출하겠다는 말인데 법을 어기는 것도 문제지만 기업의 도덕성을 신뢰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작업자 안전조치를 철저히 관리하면서 무용제 도료 사용을 24년까지 60%까지 끌어올리겠다”고만 말했다.


영남취재본부 강샤론 기자 sharon7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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