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혜리/언론인·문화비평

[톺아보기]'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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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 측이 지난 4월 국가에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 3181점(국립중앙박물관 2만 1693점, 국립현대미술관 1488점)에 대한 정부의 활용방안이 나왔다. 부산시와 대구시 등 30여개 지자체가 지연·학연 등을 내세워 미술관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7일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방안’을 발표했다.


별도 전담팀과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이하 위원회)’가 10여 차례 논의를 거쳐 마련했다는 단계별 활용방안의 요지는 이렇다. 기증품에 대한 등록·조사·연구· 데이터베이스 구축, 특별전시를 통한 주요작품 공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약칭 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추진하되 서울 용산이나 송현동 부지 2곳을 후보지로 한다는 것이다.

지역의 사활을 걸고 미술관 유치전을 벌이던 지자체들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공정성 무시’, ‘지역차별’, ‘수도권 인사 중심의 위원회가 내린 결정’이라며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국립미술관 건립 계획을 던져 놓고는 절차를 무시한 채 서둘러 서울로 발표한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 불만을 잠재우려고 대구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설립한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내년 대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결정이라면 다른 지역은 가만히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아마도 조만간 전국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들어설 지도 모른다.


그런데 좀 더 심각하게 들여다 볼 부분은 ‘이건희 기증관’의 구성과 운영방식이다. 문체부의 구상은 기증품 2만 3000여 점을 통합적으로 소장·관리하며 분야와 시대를 넘나드는 조사·연구·전시·교류를 추진하는 별도의 기증관을 세우는 것이다. 상상을 해보니 그야말로 ‘잡탕밥’이다.국내 외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숱하게 다녀 봤지만 이런 곳은 어디에도 없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세분화되어 가는 세계적 추세와도 역행이다. 그래서 미술관도, 박물관도 아닌 두루뭉술한 ‘기증관’으로 이름 지었는지 모르겠다. 유족 측이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양구 박수근미술관, 제주 이중섭미술관 등 지방 미술관 5곳에 별도로 작품을 기증한 것도 작가와 작품의 맥락에 따른 결정이었다. 마찬가지로 기관의 특성과 역할을 고려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나눠 기증한 것을 굳이 한데 모으려는 저의가 뭔지 모르겠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유물 중 고문서과 서적 등 전적류가 1만 2000점으로 이는 전시용이라기보다 연구용이다. 일반 대중의 관심은 끌지 못하지만 기존 소장품과의 연결고리가 될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등의 전문 인력을 활용한다는 계획인데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다. 회화의 경우 기증 작품은 한국 고미술부터 서양의 인상파까지 망라하고 있어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건희 컬렉션을 토대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촉구하던 미술계에선 문체부의 잡탕식 기증관 건립계획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발족에 앞장섰던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박물관과 미술관의 경계를 넘어 융복합하는 새로운 하이브리드한 기관을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실험”이라고 일갈했다.


개인 컬렉션은 말 그대로 돈 쓰는 사람의 취향대로 할 수 있으니 누군들 이거 사라, 저거 사라 참견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그 관리 주체가 국가가 된 마당에는 달라짐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시대, 작가, 장르를 맥락 있게 정리하고 연구해 상설전시 하거나 기획전을 꾸며 보여주는 것이 ‘국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요, 국가기증의 취지를 존중하고 가치를 확산하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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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말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삼성가에서는 호암미술관과 더불어 2004년 서울 한남동에 삼성미술관 ‘리움’을 개관해 운영해 왔다. 외국의 미술계 인사들이 서울에 왔을 때 반드시 방문하는 미술관이다. 컬렉션의 방대함은 이 미술관의 자랑거리였다. 그럼에도 2만 3000여점을 뚝 떼어 국가에 기증한 이유와 의미를 차근차근 따지고 무엇을 어디에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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