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웨이브] 가상화폐 거래소, 사토시의 철학을 잊었나
데이비드 차움이 최초로 가상화폐를 제안한 지 26년 후인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겪은 사토시 나카모토는 자연스레 금융기관의 불투명성 및 비대화·권력화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으며, 이에 금융기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동작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된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발명하게 된다.
길게 보면 300년, 짧게 보면 100년간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독점하고 있던 화폐 발권력을 P2P(개인 간 거래) 통신 및 암호 기술을 이용해 개인에게 돌려줬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의 등장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하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가상화폐의 발권력은 고성능 채굴 장비로 무장한 몇몇 소수 기업들에 독점되게 됐고, 보다 더 쉽게 가상화폐를 구하고 싶어 하는 이용자들과 수수료 수익에 관심을 가진 사업자들의 이해가 만나 가상화폐 거래소가 탄생하게 된다.
또 다른 금융기관이라 할 수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의 존재는 분명 사토시가 추구한 철학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래소가 가상화폐 대중화에 일정부분 기여해 왔다는 점에서 그 공을 간과할 수만은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그간의 공조차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기에 참으로 우려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25일에 있었던 개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의 시행 및 6월17일에 입법예고한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 이후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앞다퉈 세칭 ‘잡코인(altcoin)’ 정리에 나서고 있다. 특금법 및 시행령 개정안은 가상화폐 사업자에게 금융기관에 준하는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고객 예치금 분리보관,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 획득 등을 신고 수리 요건으로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거래소는 더 이상 본인과 특수 관계에 있는 자가 발행한 가상화폐를 취급할 수 없으며, 가상화폐 거래소와 임직원이 해당 거래소를 통해 가상화폐를 사고파는 행위(자전거래) 또한 금지된다.
거래소들은 부랴부랴 코인 정리 작업에 들어가고 있는데, 문제는 이 과정이 전혀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거래 중단을 결정하는 기준이나 거래 유의 종목 지정 후 상장 폐지까지 걸리는 기간도 거래소마다 제각각이다 보니 "한국에서 만든 김치코인들만 정리하는 것이 아니냐" "무차별적으로 코인들을 상장해 수수료를 챙길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무책임하게 발을 빼느냐" 등등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사실 가상화폐 거래소의 정보 독점 및 권력화에 대한 우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결과 탈중앙화된 거래소가 대안으로 제시되고는 있으나 아직 보안성 및 유동성 공급의 안정성 측면에 있어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들이 남아 있다. 기업이 이윤을 내려고 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겠으나 사토시의 유산인 가상화폐와 이용자들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거래소는 뭔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소명의식과 사명감은 뒤로한 채 분권화, 투명성 등 사토시의 철학을 그저 마케팅 용도로만 활용하는 가상화폐 거래소는 어쩌면 기존의 금융기관들보다 더욱 경계해야 할 대상일지도 모른다. 정보 공개 등 투자자를 위한 투명성 확보, 공정한 기준을 바탕으로 한 자율검증 실행, 엄격한 내부 규칙 제정 등 가상화폐 거래소의 책임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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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주 교수(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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