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수 엔공구 대표, 가정형편 어려워 고1때 자퇴

고아원 후원 협약·청년 위한 공유오피스텔 제공도

최만수 엔공구 대표가 어린시절 가난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최만수 엔공구 대표가 어린시절 가난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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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고기 사먹을 돈이 없어 내장국밥을 먹으며 행복해 했던 그때를 잊지 않고 베풀며 살겠습니다.”


어린시절 어려웠던 환경을 딛고 어엿한 CEO로 성장한 30대 청년 사업가 최만수 ㈜엔공구 대표.

40여 명의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이끌고 있는 그가 요즘엔 ‘금수저’라는 말을 듣지만 지난 10여 년은 매일이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한다.


가정형편이 얼마나 어려웠던지 고등학교 1학년에 자퇴를 해야 했고 장남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곧바로 사회에 몸을 던져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가릴 것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미성년자에다 학벌도 좋지 않았던 그를 인정해주는 회사는 당연히 없었다. 아르바이트가 고작이었지만 이때 받았던 월급 70여만원 조차도 자신이 가족들에게 보탬이 됐다는 생각에 그저 행복했다고 한다.


이 무렵 부모님도 이혼을 하면서 동생은 아버지에게 최 대표는 어머니와 단 둘이 떨어져 살게 됐다.


없는 이들에겐 악재도 몰려온다 했던가. 19살 무렵 날벼락이 떨어졌다. 입영통지서가 온 것이다.


가난이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한편으론 군대가 오히려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한 그는 어머니를 생각해 결국 생계를 이유로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복무를 대체했다.


이곳에서 악착같이 모은 400만 원으로 판촉물 사업을 시작했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지만 자본력이 부족한 지방 출신 청년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광주라는 지방에서 판촉물 온라인 사업이 활성화도 되질 않아 서울에 가야 했지만 지방에서 20살이 갓 넘은 청년에게는 서러움이 컸다.


전념을 해도 모자랄 판에 돈이 부족해 대리운전과 택시 등을 병행하며 사업을 전전긍긍하다 보니 마치 ‘성공’은 남의 이야기로만 들렸다.


그때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남을 도울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하면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의 청년들을 도와 자신처럼 힘든 삶을 살게 하지 않겠다’.


근근이 사업을 이어가던 중 다른 사업이 눈에 띄었다. 어차피 어려운 게 현실인데 평소 좋아하는 것을 하자고 생각한 것.


자동차 용품 관련 사업에 뛰어 든 그는 새벽 4시부터 사무실에 출근해 일을 했다. 초창기에는 인프라 구축도 잘되지 않았고 노하우도 없어 몸으로 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단칸방부터 시작해 차츰 사무실을 늘려 현재는 소속 직원만 40여명, 전국 22개 대리점을 둔 어엿한 CEO로 거듭났다. 24살부터 사업을 시작해 10년 만에 자신의 꿈을 이뤘다.


지난 2019년 광주 광산구 수완동에 상가를 임대해 18개의 공유 오피스텔을 만들었다. 이제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의 청년들의 거점을 적은 월세로 빌려주기 위해서다.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해주는 멘토의 역할도 함께 해주고 있다. 이곳에서 시작한 2~3명은 현재 어엿한 중소기업 대표로 성장해 최 대표와 연락을 주고받기도 한다.


15년여 전 이혼하신 부모님도 다시 함께 모셨고 타지역에서 생활하던 동생 가족도 불러 화목한 가족을 다시 만들기도 했다.


이제는 사회공헌활동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 늘 자신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막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을 지원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고아원에도 후원 협약을 체결했다.


최 대표에게는 어린시절부터 하고 싶은 게 있었다. 먹고 살만큼 돈을 벌어서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면서 사는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꿈꿔온 어려운 이웃돕기의 첫 걸음으로 광주희망복지 재단과 후원 협약을 맺으면서 또 하나의 꿈을 이뤘다.


육아용품 기부, 전기히터 등 겨울용품 전달, 핫팩·쌀 후원 등은 전부터 해 왔지만 기관과 정식 협약을 맺은 것은 처음이다.


엔공구 임직원들이 함께 한 달에 일정 금액을 적립하고 모인 성금을 희망복지재단이 급하게 필요한 고아원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게 했다.


이외에도 수녀원과 미혼모 시설 등에도 정기 후원을 하면서 따뜻한 사회 만들기에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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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는 “어린시절 흔한 돼지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도 돈이 없어 ‘눈물 젖은 내장국밥’으로 대신할 정도로 가난의 서러움은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안다. 이제는 사회에 환원하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면서 살아갈 것”이라며 “직원들도 단순히 일로 만난 사이가 아닌 인생의 선후배, 동반자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yjm30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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