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입양 당시 오성민 씨. 사진 제공=아동권리보장원 입양지원센터

1979년 입양 당시 오성민 씨. 사진 제공=아동권리보장원 입양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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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권서영 기자] 1979년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남성이 "기회가 왔을 때 후회하기 않기 위해 친어머니를 찾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오늘(25일) 미국 입양 한인 크리스토퍼 포들레스키(48) 씨가 아동권리보장원 입양인지원센터에 보낸 사연에 따르면, 그는 1978년 3월15일 5살 때 서울 노량진에서 길을 헤매다 행인에 의해 발견됐다. 그는 이후 노량진경찰서에 넘겨진 뒤 입양 기관인 동방사회복지회의 도움을 받아 이듬해 6월 미국으로 입양된 것으로 알려졌다.

포들레스키 씨의 입양 기록 상 출생일은 1973년 9월10일로, 이름은 '오성민'이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이름과 생일이 정확한지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포들레스키 씨는 "맛있는 냄새가 나서 그곳으로 향했다. 사람들과 차량이 오고 가는 곳에서 길을 잃었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다 헤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누군가 그를 경찰서로 데려갔고, 그는 3개월 동안 임시보호소에서 머물렀으나 부양 의무자가 확인되지 않아 성로원에 보호가 의뢰됐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양부모 아래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고, 대학 졸업 이후에는 전자 엔지니어가 되어 중견 기업에서 일하며 결혼해 두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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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들레스키 씨는 "항상 엄마가 어딘가에서 저처럼 마음 아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후 그는 코로나19가 완화되고 나면 한국을 찾아 장기적으로 체류하면서 어머니를 찾고, 가족을 알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며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권서영 인턴기자 kwon192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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