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마드리드에 개성있는 미술관이 하나 있다. 오래 전 출장 중 이 미술관을 처음 접하곤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이후 마드리드만 찾으면 가장 먼저 향하는 미술관으로 이곳 티센보르네미사국립미술관을 꼽게 됐다. 이 미술관은 한때 영국 왕실 다음으로 큰 규모의 개인 컬렉션이었다. 오랜 노력 끝에 국립미술관이 된 매력적인 이야기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독일의 티센 가문은 3대에 걸쳐 예술작품을 수집했다. 아우구스트 티센(1842~1926)은 철강업으로 부(富)를 축적했다. 그는 로댕의 작품 7점 수집과 함께 가문에 수집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들은 지금도 컬렉션의 시원이 된 그를 기억하기 위해 미술관 입구에 전시돼 있다.

본격적으로 컬렉션을 구축한 이는 아우구스트의 아들 하인리히 티센(1875~1947)이다. 그가 헝가리 보르네미사 가문의 여인과 결혼함으로써 귀족의 칭호를 받아 컬렉션 이름이 완성됐다. 이어 1936년 스위스 티치노주(州) 루가노에서 구입한 궁전 빌라파보리타에 갤러리를 만들었다.


하인리히의 아들 한스 하인리히 티센(1921~2002)은 1947년 아버지 별세 후 컬렉션과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는 빌라파보리타를 일반 대중에 공개했다. 형제들이 경매에 내놓은 작품들까지 다시 구입해 아버지의 컬렉션을 한데 모으기 위해 애썼다.

한스 하인리히는 고전 작품을 계속 수집했다. 동시에 자기만의 취향을 가미해 독일 표현주의에서부터 20세기 아방가르드와 팝아트까지 컬렉션을 확대했다. 소장품 규모가 커지자 스위스 당국에 전시공간 확장 지원을 요청했다. 이때 영국·독일 등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을 보여 당시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결국 그의 부인 카르멘 체르베라의 영향으로 작품들은 스페인으로 향하게 된다.


1988년 스페인 정부는 컬렉션 가운데 775점을 대여하고 5년 후 구입하는 조건으로 티센가(家)와 계약 체결에 나섰다. 마드리드의 오래된 궁전을 리모델링해 완성한 새로운 티센보르네미사미술관은 1992년 10월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그로부터 8개월 뒤 스페인 정부는 작품가에 훨씬 못 미치는 3억5000만달러로 대여 작품들을 구입했다. 약속을 지킨 것이다.


스페인 정부와 티센가의 협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1999년 카르멘 체르베라의 컬렉션이 10년간 무상 대여로 전시되고 스페인 정부는 이를 위해 새로운 전시공간과 부대시설도 갖춰 나갔다. 이에 대여 기간이 연장되고 향후 국가가 작품들을 구입하는 것으로 최근 협의했다.


티센보르네미사미술관은 2017년 국립미술관으로 탈바꿈하면서 국가의 적극적인 노력이 빛을 발했다. 올해는 하인리히 티센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로 미술관에서 전시 등 그를 기리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열리고 있다. 그는 정치와 이념에서 비롯된 갈등을 예술 공유로 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술이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 그의 정신은 미술관에서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다.


개인 컬렉션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컬렉터의 철학과 열정을 기억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최고의 컬렉션을 두고 갈림길에 놓여 있다. 컬렉터를 기리고 최고 작품을 공유함으로써 국격까지 높일 수 있다면 지금이 더없이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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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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