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민주주의 발전 헌신’ 강신석 목사 영면
8일 국립5·18민주묘지 안장…허토 행렬 한동안 이어져
이용섭 광주시장 “그 걸음 좇아 ‘시대정신’ 이을 것” 추도
[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윤자민 기자] 일생을 민주주의 발전에 헌신한 고 강신석 목사가 영면에 들어가는 8일 오후 1시 40분께 국립5·18민주묘지 2묘역.
고 강 목사의 유해가 담긴 유골함과 영정사진을 유가족이 차에서 내리자 일순간 숙연해졌다.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예배를 마친 고인의 유해는 영락공원에서 화장된 뒤 이곳에 도착했다.
고인의 둘째 아들 강의권씨가 유골함을 들었고 유족과 목사, 장례위원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안장식은 고인에 대한 경례, 하관, 허토, 묵념, 가정의례 순으로 진행됐다.
유골함을 하관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유형선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의 시작으로 유족대표 강의준씨, 이용섭 광주광역시장, 유가족의 순으로 허토했다. 유가족이 모두 마친 이후에도 한동안 허토는 이어졌다.
한 시민은 허토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목사님 감사하고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으며, 또 다른 지인은 준비된 삽을 놔두고 양손으로 흙을 집어 허토하기도 했다.
허토를 마치자 참석자들은 묵념으로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안장요원들이 고인의 유골함을 묻는 봉안절차가 진행되자 둘째아들 강의권씨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한동안 올려다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이용섭 광주시장은 “고 강신석 목사님은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한줄기 빛이었다”며 “이 땅의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를 위해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오신 희생과 헌신, 그 뜨거웠던 삶은 온 국민의 가슴에 잊히지 않을 등불이 돼 새겨졌다”고 추도했다.
이어 “고인의 큰 뜻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그 걸음 좇아 시대정신을 잇겠다”고 조사했다.
그렇게 고 강 목사는 국립5·18민주묘지 2묘역 1-113에 안장됐다.
한편 지난 5일 84세의 일기로 눈을 감은 강신석 목사는 5·18진상규명 등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신장에 일생을 바쳤다. 종교, 교육, 통일 등 사회운동 전반에 헌신한 지역 원로다.
1938년 광주에서 출생, 광주고등학교와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전남 해남 송석교회와 무안 해제중앙교회, 목포 영동교회, 광주 무진교회 등에서 담임목사를 지냈다.
1976년 광주양림교회에서 유신반대 성명서 낭독을 주도하다가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1년여 옥살이를 한 뒤 특별사면 됐다.
1980년 5월 17일 검속 수배명단에 포함됐지만 초기 5·18시민군과 생활을 같이 했으며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서울로가 독일 대사 등을 만나 진실을 설명했다. 1984년에는 직접 독일을 방문해 진실을 알리기도 했다.
김영삼 정권 시절에는 5·18특별법 제정 100만 명 서명운동을 전개했으며 이 특별법을 통해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관계자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사회 약자들 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1982년 광주 YMCA중등교사회를 만들고 해직교사들을 뒷바라지하기도 했으며 전교조의 합법화를 위한 활동에서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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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참교육상, 2019년 한신상, 2021년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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