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인터뷰]장지상 산업연구원장 "GVC 구조개편 가속…韓, 첨단산업 플랫폼 될 기회로"
코로나로 세계 제조업 쇼크
점진적 탈중국화에 주목
디지털 기술로 제조업 고도화
신남방 국가와 협력도 필요
핵심 교역국들 CPTPP 가입
韓, 늦을수록 진입장벽 높아져
탄소중립정책 성공 위해선
기업참여 위한 유인제도 절실
장지상 산업연구원장이 집무실에서 국내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장 원장은 아시아경제와의 신년인터뷰에서 올해 급격한 글로벌밸류체인(GVC) 구조재편이 일어날 것이라며 한국도 이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제공=산업연구원)
[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높아진 글로벌밸류체인(GVC) 변동성에 대응해 국내 산업전략 방향을 재설정해야 합니다."
장지상 산업연구원장은 지난해 말 아시아경제와의 신년인터뷰에서 올해 GVC 구조재편이 급격하게 이뤄질 것이라며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당부했다. 전 세계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탈중국'을 기치로 내걸고 공급망 재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만큼 우리 기업 역시 이 같은 움직임에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급망 재편을 돕기 위해 메가 자유무역협정(FTA) 가입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세계 경제의 13%를 차지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하면 공급망을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다. 장 원장은 "지금부터라도 빨리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급망 탈(脫)중국화 대응…국내산업 고도화·신남방 협력"
장 원장은 세계가 코로나19 위기에 빠진 지금이 GVC의 급속한 구조재편에 맞춰 국내 산업전략 방향을 재설정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중심주의의 부상, WTO 중심의 다자무역체제 위기 등을 근거로 '탈세계화'를 전망하지만 'GVC 구조재편' 과정이 진행되는 과정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공급망 개편의 핵심에는 중국이 자리잡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서 잇달아 조업이 중단되면서 전 세계 제조업은 연쇄 충격에 빠졌다. 부품 공급이 끊기면서 다른 지역의 제조공정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장 원장은 "점진적 탈중국화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에 대응해 한국을 동아시아 '첨단산업 플랫폼'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기술 등을 이용해 국내 산업을 첨단 제조업으로 고도화하면서 노동집약 제품의 생산기지로 떠오르는 신남방 국가와 협력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산업별·제품별로 GVC 재편 경향은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부품·소재 등 자본과 기술이 많이 드는 산업을 둘러싸고 한국, 중국, 대만, 일본이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일 것으로 봤다.
장 원장은 "소재·부품 부문에서 단기간에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는 쉽지 않지만 공급을 분산화·다변화하는 흐름이 강화될 것"이라며 "한국으로 생산이나 연구개발 기지를 옮기려고 하는 외국인투자기업의 투자 수요를 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첨단기술·제품·산업을 중심으로 외국인투자 유치 목표를 설정한 뒤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정책을 목표에 맞게 정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CPTPP 가입 앞서 디지털무역 살펴야"
장 원장은 높아진 교역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메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세계 최대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정문 서명식에 참석해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협정문에 서명하자 박수치는 모습.(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8일 CPTPP 가입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관련해 장 원장은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핵심 교역국인 미국, 중국, 영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등이 CPTPP에 가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늦을수록 진입장벽이 높아질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CPTPP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중장기적으로 우리와 무역 관계가 긴밀한 나라들은 가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원장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새 북미무역협정(USMCA)을 관통하는 미국의 무역 규범 정책인 '디지털 무역, 환경, 노동, 국영기업, 보조금' 등의 이슈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이 이를 중심으로 국제무역규범을 다시 짜고,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무역체제를 복원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장 원장은 "국영기업, 보조금 규제 등은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시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미국이 CPTPP에 가입한다면 이러한 의도를 관철할 것"이라며 "'디지털, 환경, 노동'은 한국형 뉴딜의 세 축이란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국제 무역 질서 재편 과정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탄소중립 위해 재정·조세 지원 필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12월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명래 환경부 장관./강진형 기자aymsdream@
원본보기 아이콘2050 탄소중립 정책(탄소 순배출 0)이 성공하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재정 투입은 물론이고 산업계와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유인 제도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특히 민간 스스로 추진할 수 있는 분야와 국가 지원이 필요한 분야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 산업단지와 산업 현장의 스마트·그린 산단 전환은 정부가 관련 기술과 재정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분야인 만큼 기업들이 비전을 갖고 투자 의지를 보인다면 단기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도 산업 현장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린수소를 활용한 수소환원제철 공정이나 CCUS(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는 원천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고, 민간이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 주도의 투자와 산업화 지원이 필요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탄소중립은 철강, 시멘트 등 국내 기간산업에 위협적인 존재다. 2023년께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CBA) 대책을 시행하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탄소 집약적인 수입품에 대해 탄소조정료 또는 할당량을 부과할 것이라고 공약한 만큼 수출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장 원장은 "EU는 CBA를 시행하면서 시멘트, 철강 산업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예정"이라며 "탄소세, 탄소관세, 배출권거래제와의 연계 등 다양한 형태로 추진할 수 있는데, EU엔 이미 배출권거래제도가 정착돼 있는 만큼 배출권거래제와 CBA를 연계해 시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당장 탄소세를 매기긴 어려울 것으로 봤다. CBA가 일종의 보호무역 조치라 WTO의 국제통상 법규와 충돌하는 문제가 있고, 전 세계적으로 수출입품의 탄소함량 산정방식과 탄소비용 산정 방법론 등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EU, 미국이 CBA를 도입하면 생산기업의 원재료 구입비용이 늘고 소비자 가격이 오를 수 있다. 철강의 경우 지난해 기준 EU와 미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11%, 9%나 된다. CBA 도입 시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장 원장은 예상했다. 시멘트는 미국이나 EU 시장으로의 수출이 어려워지면 중국 등 경쟁국가의 제품이 우리 시장으로 밀려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장 원장은 "정부는 신속한 정보 제공, 다양한 영향 분석과 더불어 단기 전환 비용에 대한 세제·금융지원, 중복적인 환경 규제 효율화 등을 통해 기업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판 뉴딜 위해 녹색 투자펀드 조성도 검토해야"
장 원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의 성공을 위해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녹색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현재는 일부 분야에서 탄소를 줄이는 대책을 강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녹색화를 전 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제조업 녹색화'를 추진하려면 산업 내, 산업 간 연계와 전환을 목표로 단계적인 추진 방안을 수립해 중간 검토와 평가, 개선 과정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개별 기업과 산업계가 관련 연구개발(R&D)에 전념할 수 있도록 투자 여건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장 원장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녹색 분야 기업에 대한 여신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정부가 출자하고 민간이 참여하는 매칭펀드 방식의 지원을 확대해 녹색 산업 투자펀드를 조성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보다 필요한 부분은 산업계의 이해와 협조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국판 뉴딜 등 정부의 모든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수용자의 자세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업이 정부시책에 따라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노력을 보이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기업은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는 공정을 개선하게 될 여지가 크다고 봤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기업의 참여를 더욱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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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해 산업별·업종별 특성에 맞게 배출권을 할당하는 방식의 '한국형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3차 계획기간(2021~2025년)'엔 돈을 주고 유상할당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는 41개 '유상할당 업종'의 유상할당 비율이 2차 계획기간(2018~2020년)의 3%에서 10%로 높아졌다. 그만큼 철강·시멘트·석유화학·정유 등 탄소 다배출 산업계의 부담이 커진 만큼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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