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된 미군의 모습[이미지출처=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된 미군의 모습[이미지출처=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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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미 보건당국이 화이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모든 접종승인절차를 마무리짓자마자 미 국방부에서 "'디데이(D-day)'가 시작됐다"고 선포했다. 여기서 디데이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결정타를 날린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일을 의미하는 전쟁 용어로 반격의 발판을 비유할 때 쓰인다.


하지만 단순한 비유라 하기엔 미 국방부는 상당히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운송기간 내내 영하 70도 이하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까다로운 화이자 백신의 운송조건에도 가용전력을 모두 동원해 290만명분을 1차 수송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숫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동원된 미군과 영국군 등 연합군 숫자와 대동소이하다. 디데이 선포날인 13일(현지시간) 미국 내 누적사망자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일에 희생된 장병 수인 30만명이 넘어선 것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다.

미 국방부가 디데이란 단어를 선택한 것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단순히 미국뿐만 아니라 인류사 최대의 상륙작전으로 나치 독일의 패망을 이끈 작전으로 인식돼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 대륙은 모두 나치 독일의 손에 넘어가 있었고, 대륙에서 유일하게 나치 독일과 싸우고 있던 나라인 소련은 동부전선에서 2000만명 이상의 국민이 희생된 참혹한 시가전을 벌이며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당시 소련의 지도자였던 스탈린은 미국과 영국 연합군에 프랑스로 상륙, 서부전선을 구축해 독일을 양면 포위해서 밀어붙여야 한다며 줄기차게 미군의 출병을 요구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이 전 해안선에 걸쳐 방어선을 구축한 프랑스로의 상륙은 쉽지 않았다. 앞서 1942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기획한 디에프 상륙작전도 엄청난 피해를 보며 실패했고, 이어 1943년 미군이 이탈리아 상륙에 성공했지만 독일군이 알프스 산맥에 들어가 장기항전에 들어가면서 독일 본토로 진격하는 건 어렵게 됐다.

미군이 선택할 수 있는 상륙지역은 크게 3곳으로 파드칼레, 노르망디, 브르타뉴였다. 파드칼레는 영국 본토와 매우 가까웠지만 해안선이 좁아 대규모 병력을 전개하기 어려웠고, 브르타뉴는 해안선은 길지만 영국 본토와 거리가 멀어 독일군이 반격할 시간이 충분했다. 작전상 특별한 장점이나 단점이 없던 노르망디가 선택됐다. 막대한 희생 끝에 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이듬해인 1945년 5월8일 나치 독일은 패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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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부가 내년 5월까지 집단면역 달성을 위해 75~80%의 미국민을 반드시 접종시켜 코로나19를 종식시키겠다고 밝힌 것도 디데이를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디데이로 2차 대전을 종식시킨 뒤 세계 패권국가로 올라선 미국의 영광을 회복하겠다는 숨은 의도도 엿보인다. 2020년 미국의 디데이가 앞으로 어떤 반전의 역사를 써내려갈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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