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산책] 사일로 상점 - 물어봐주세요, 얼마예요? 대신 어떤 사연이 있냐고
중세유럽풍 인테리어 속 색색의 공간
골동품으로 가득한 앤티크 빈티지 숍
10년 미국생활 모은 물건 가져온 대표
“빈티지 물건 사치품이라 여길 땐 슬퍼”
“추억 이어받는 문화 경험하길 바라”
[아시아경제 김가연 기자] 세상에 발 딛고 사는 이들은 애정하는 무언가를 가지게 마련이다. 다른 이에게는 그저 그런, 수많은 것 중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자신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것 말이다. 때로는 그 무언가가 기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소중한 사람에게서 건네받은 선물, 여행지에서 산 기념품, 유년 시절의 장난감, 부모님의 손길이 닿은 물건 등 헤아릴 수조차 없다. 추억을 고이 간직한 물건들은 평소에는 잘 찾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한다. 이사를 가더라도 쉬이 내치지 못하고 함께 이동하곤 한다. 그런 소중한 마음이 담겨 있음 직한 소품들이 가득한 곳으로 떠나보자.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작은 앤티크ㆍ빈티지 숍 '사일로상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저마다 색색의 기억을 품은 골동품이 가득한 곳이다. 적지 않은 인스타그래머들의 추천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일로상점은 지하철 6호선 망원역 2번 출구에서 10분 남짓 걸으면 닿을 수 있다. 영화 '해리포터' 속 과자점을 연상케 하는 초록색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누군가의 보물 같은 이야기가 담긴 소장품을 모아둔 창고가 펼쳐진다. 중세 유럽풍의 인테리어 때문일까. 마치 다른 세상으로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액세서리는 물론 식기, 장식품, 미술품으로 빼곡해 박물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기에단 대표(33)는 10여년간의 미국 생활 동안 가족과 모아온 물건들을 한국으로 옮겨와 연인과 함께 이 공간을 꾸렸다. 원주인의 추억을 품은 골동품들은 기 대표의 애정을 한 겹 덧입은 채 이곳에서 빛나고 있다. 그는 사연이 담긴 빈티지들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아 하나하나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가게 이름은 큰 탑 모양의 곡식 저장고라는 뜻인 영단어 '사일로(silo)'에서 따왔다. 기 대표는 "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사일로라는 단어가 나온다. 곡물 창고라는 뜻인데,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가축에게 먹일 건초와 다음 해 농사 때 심을 종자들을 저장하는 곳이어서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라고 하더라"라며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는 창고가 되고 싶어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기 대표는 "누군가의 물건을 물려받음으로써 사람과 사람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게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만난 물건들을 상품으로 그냥 팔아넘기기보다 거기에 담긴 추억을 이어받는 문화를 사람들이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고 공간을 꾸리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미국의 일반적인 가정에서 주말마다 차고 앞에 테이블을 펼쳐놓고 물건들을 정리ㆍ판매하는 거라지 세일(garage sale) 얘기를 꺼냈다. "아이들은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어른들은 표지판을 따라 이리저리 분주하게 보물찾기를 하는 등 생기 넘치는 풍경이 펼쳐진다"면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건 뭐냐'라고 묻는 말에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설명하는 분들이 참 많았는데, 그 사연을 이어받아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약속드린 뒤 받아온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빈티지 물건들이 사연과 문화가 결여된, 인테리어 사치품 정도로만 여겨지는 일각의 우리 문화가 안타깝다는 말도 했다. 지금 시대에 쓰이는 물건들이 버려지기보다 다음 세대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되면 좋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추억이 담긴 물품을 허투루 버리지 않고 그 의미를 담아 다른 이에게 건네면서 일종의 연대의식을 공유하고, 커뮤니티를 건강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기 대표가 자신의 취향껏 가꾼 이 공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빨간색과 흰색으로 꾸며진 첫 번째 공간, 파란색으로 꾸며진 두 번째 공간, 노란색과 초록ㆍ연보라색이 어우러진 세 번째 공간은 각각 응접실, 1900년대 초 가정집, 사적이고 내밀한 곳을 뜻한다. 기 대표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대사를 언급하며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돌아가고 싶은 시대를 꿈꾼다고 한다. 빈티지와 앤티크 물건들이 실생활에서 쓰인 그 시대를 재현하려 했다"며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여러 가지여서, 한 생명체의 마음속을 방문하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각각 다른 사연을 담은 다양한 소품들이 '사일로 상점'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매대에는 원 주인의 이름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기도 하다./사진=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
원본보기 아이콘기 대표는 이곳에서 도슨트로 분하기도 한다. '도나' '크리스틴' '프랜시스' 등 원주인의 이름이 적힌 스티커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 물건에 담긴 각각의 사연, 기 대표가 원주인과 나눈 이야기, 물건의 역사적 가치 등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오랜 세월을 지나온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얼마예요?'보다는 '어떤 사연이 있어요?'라고 물어주세요"라는 당부가 담긴 메시지 카드도 붙어 있다.
여러 물품을 향한 기 대표의 애정은 독특한 판매 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오랜 기간 소장하고 아껴온 '보물'인 만큼 저보다 소중히 간직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첫 방문자로서는 물건을 구입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기 대표는 "처음 봤을 때는 충동구매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사고 나면 나중에 후회가 될 때도 있지 않나"라며 "그렇게 되면 저나 구매자나 모두 속상한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처음에는 구매를 만류하고, 그래도 계속 눈에 아른거리면 다시 오시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제 보물들을 진심으로 예뻐해주는 분들을 만날 때"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상장 첫날 70% 폭등 "엔비디아 독주 끝나나"…AI ...
기 대표는 요즘 더 색다른 준비에 한창이다. "1900년대 초반의 프랑스 살롱처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시대의 음악을 듣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삶의 노래를 부르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말에서 사일로상점만의 새로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기 대표는 "마당을 예쁘게 단장해 단골손님들과 애프터눈 티 파티를 열거나 좋아하는 빈티지를 자랑하고 함께 즐기는 동호회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