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공매도]트라우마·딜레마 그리고 공매도
주가 내려가야 이익보는 투자기법
개미들은 "증시 하락 부추긴다"
국민청원까지 넣어 '폐지' 목소리
주가거품 제거 등 순기능도 있어
기관투자가들은 '벙어리 냉가슴'
내달 금지 연장 여부 결정, 관심 집중
[아시아경제 박지환 기자] 직장인 이창준(40ㆍ가명)씨는 4년 전만 생각하면 뼈아프다. 2016년 9월29일 한미약품은 장 마감 후 1조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는 호재성 공시와 다음 날 장 초반 다른 기술수출 계약이 해지됐다는 악재성 공시를 연이어 냈다. 기관투자가들은 발 빠르게 악재성 공시 전 평소보다 20배 규모의 주식을 공매도하면서 대규모 차익을 올렸다. 하지만 이씨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그는 "기관들의 공매도 때문에 이틀 새 주가가 60만원대에서 40만원대로 폭락했다"며 "어렵게 모은 종잣돈을 더 이상 잃지 말자는 생각에 수천만 원의 손실을 감수하고 손절했다"고 한탄했다.
개인투자자에게 공매도는 트라우마다. 외국인ㆍ기관투자가의 공매도에 속절없이 손실을 보는 경우가 심심치 않기 때문이다. 공매도는 실제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빌려와 현재가에 팔고, 약속한 시간 내에 주식을 매수해 빌린 주식을 갚는 투자 기법이다. 주가가 내려가야 이익을 보는 구조이기 때문에 공매도가 많은 종목은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주가가 급락하자, 지난 3월 정부는 공매도를 한시적으로 금지했다. 기한은 다음 달 15일까지다. 개인들은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조장한다' '개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공매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등의 이유로 공매도 금지기간 연장은 물론 완전 폐지까지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주식시장에서 공매도 거래액 103조4936억원 중 개인투자자 비중은 1.1%에 불과했다. 외국인(62.8%)과 기관(36.1%)의 비중은 총 98.9%였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이달 초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은 공매도를 폐지하거나 금지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공매도 폐지를 주장한 응답자가 38%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25.6%는 공매도 금지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특히 주식시장에 관심도가 높은 응답자(49.1%), 투자 경험이 있는 응답자(45.9%)는 절반 가까이가 공매도 전면 금지를 요구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공매도 관련 국민청원은 3200여건에 이른다. 대부분 공매도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한 청원자는 "법도 없고, 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라며 "힘도 없고, 백(배경)도 없는 저는 공매도가 무섭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증권사 등 기관투자가는 '벙어리 냉가슴'이다. 공매도가 주요국 대부분이 도입하고 있는 투자기법인 데다 순기능도 많기 때문이다.
주가가 고평가됐을 때에는 과열된 주가의 거품을 걷어내는 역할을 한다. 하락장에서는 증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능도 있다. 이 때문에 지난 5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오스트리아, 그리스 등 유럽 6개국은 공매도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은 아예 공매도 금지를 시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공매도를 빨리 재개하자"는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동학개미운동'으로 개인들의 목소리가 커진 데다 정치권까지 공매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서다. 지난 6월 말 문재인 대통령이 세제개편과 관련해 "주식시장을 위축시키거나 개인투자자들의 의욕을 꺾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고 발언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공매도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말조차 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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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다음 달 초께 공매도 금지 기한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정치권에서 '이번 기회에 공매도 제도를 현실에 맞게 손질하자'는 의견이 많은 만큼 공매도 제도 개선안이 마련될 때까지 전면적 공매도 재개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외국인 투자 확대 등을 위해 대형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재개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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