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포스트 코로나, 미래환자 치료하는 의사과학자 양성해야
AD
원본보기 아이콘


30년 전 공대가 의대보다 인기가 많던 시절, 안정된 삶을 찾아 의대에 진학한 나는 운명처럼 허갑범 선생님을 만났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내시고 당뇨병의 권위자셨던 선생님은 처음 만난 신입생에게 MD-PhD가 뭔지 아느냐고 물어보셨다. 모른다고 대답한 나에게 앞으로는 임상 진료보다 연구개발(R&D)에 종사하는 의사가 많이 필요하다고 하시며, 의사과학자의 길로 인도하셨다. 선생님은 심지어 내 결혼식 주례사에서 "질병만 치료하는 소의(小醫)가 되지 말고 연구를 통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는 대의(大醫)가 되라"고 하셨다. 그렇게 평생을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헌신하신 허 선생님은 지난 1월 소천하시며 의사과학자 양성이라는 유업을 내게 남기셨다.


20여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의대의 인기가 올라갔다. 조선, 자동차, 반도체에 이어 바이오의료산업을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의대에 진학한 우수한 인력을 의사과학자로 양성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했다. 1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바이오의료산업의 발전을 위해 의사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30년째 같은 말을 하는데 우리의 현실에선 아직도 의사과학자를 찾기 어렵다. 지난 30년간 십만 명의 의사가 양성됐지만 전업으로 연구에 종사하는 의사과학자는 100명 이하다. 새로운 질병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백신 및 신약 개발을 위해서도, 혁신적인 의료기기 제작을 위해서도 의사과학자는 필수적이지만 R&D에 종사하는 의사는 거의 전무하다.

금년 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현장에서 수없이 많은 대의를 보았다. 그들의 목숨을 건 헌신과 곧 개발될 치료제와 백신으로 머지않아 코로나19는 잦아들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감염병이, 혹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질병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기존의 의료 체계에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우리나라의 임상의학 분야는 전후 70여년 만에 이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우리는 이제 새롭게 발생한 질병을 이해하고, 효과적인 진단 및 치료법을 개발해 새로운 의료 체계를 구축하고 선도할 수 있는, 의사이면서도 과학자ㆍ공학자로 활동하는 새로운 전문가 집단이 절박하게 필요하다. 그들은 방역의 최일선에서 우리 사회를 새로운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방위군이자, 바이오의료 분야 4차 산업혁명의 최전선에서 국가의 신성장 동력을 창출해 미래를 혁신하는 대의가 될 것이다.


코로나19 치료제인 '렘데시비르' 개발로 유명한 길리어드는 1987년 28세의 젊은 의사과학자 마이클 리오단이 창업한 벤처회사에서 출발했다.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의 성과로 불과 20년 만에 글로벌 20위권의 대형제약회사로 성장했다. 혁신적 아이디어와 집중적인 개발을 통해 단기간에 대형제약회사로 도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인구 고령화와 신종 감염병의 출현,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은 위기이면서 새로운 도전의 기회이다. 국민소득 3만불을 넘어 5만불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이제 바이오의료 분야에서 세계적 기업이 나와야 한다. 질병을 잘 이해하고 R&D를 이끌 수 있는 의사과학자 양성은 이를 위한 베이스캠프다.

30년간 많은 사람이 의사과학자의 양성을 외쳤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다. 진료실 밖에서 활동하는 의사를 양성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자. 기존의 의사과학자를 넘어서, 의사-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의사-신약개발자, 의사-빅데이터분석가, 의사-AI 공학자처럼 더 세분화된 의사과학자, 즉 의사-X를 양성하자. 그들은 바이오의료산업의 현장에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우리나라를 초일류국가로 선도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AD

김하일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