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거위 깃털 뽑기
'큰손'들 거래세 인하로 감세
개인은 양도세 도입으로 증세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바람직한 세금 징수는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도록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과 같다."
17세기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재무장관이던 장 바티스트 콜베르가 남긴 말이다. 증세를 논할 때 종종 거론된다. 거위는 국민을, 깃털은 세금을 뜻한다. 세수 욕심에 무리하게 깃털을 뽑다간 거위가 저항하기 마련이니 세율을 급격히 높이거나 세목을 함부로 늘려선 안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동학개미 운동'으로 한껏 달아오른 국내 주식시장에서 '거위'들의 비명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가 전면 폐지키로 했던 증권거래세는 찔끔 인하하고, 기존에 없던 양도소득세는 새로 도입하면서 왕창 걷기로 하면서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2023년부터 대주주가 아닌 개인투자자도 5000만원 넘는 차익에 대해 20%의 양도세를 내야 한다. 증권거래세는 현재 0.25%에서 2021년 0.23%, 2023년 0.15%로 차츰 낮아지지만 폐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주식으로 5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남기면 기존 거래세와 새로 도입되는 양도세 모두를 내게 돼 '이중과세'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증권거래세는 주식의 매도가액에 비례해 징수돼 손해를 봐도 어쩔 수 없이 내야한다. 이로 인해 '이익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원칙을 거스른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정부가 거래세 폐지 없이 양도세까지 부과하자 개인투자자들은 말 그대로 '부글부글'이다.
정부는 증권거래세는 거래에 매기는 세금이고 양도세는 소득에 매기는 세금이기 때문에 과세 대상이 달라 이중과세로 보기 어렵고, 거래세를 폐지하면 잦은 거래로 시장이 혼란스러워지는 걸 막을 수 없다는 이유 등을 들며 거래세를 유지키로 했다. 5000만원 이상의 차익을 남기는 이중과세 대상은 전체 개인투자자 중 상위 2.5%인 약 15만명 수준이라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하지만 이는 모두 정부 시각일 뿐이다. 법인세만 내는 기관투자자와 자국에서 세금 대부분을 내는 외국인은 양도세 과세 대상에서 빠져 있다. 이번 세제 개편으로 증시 '큰손'들은 거래세 인하로 감세 혜택을 본 반면 증시 약자인 '개미'는 거래세에 더해 기존에 없던 양도세 도입으로 증세가 됐다. 큰손들의 세수 부족 분을 개미들에게 떠 넘긴 꼴이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이다.
정부는 주식 양도세는 선진국에서도 도입한 사례라며 적극 해명에 나섰지만 따져보면 궁색하기 그지없다. 정부가 언급한 미국(15~20%), 일본(20%), 독일(25%) 등은 양도세를 물리는 대신 증권거래세는 없다. 반대로 홍콩이나 태국, 싱가포르 등은 양도세가 없는 대신 거래세(0.1~0.2%)만 있다. 물론 영국, 프랑스 등 극히 일부 국가에선 양도세와 거래세를 함께 걷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우리보다 월등히 높은 유럽의 '찐 부유국'들이다.
정부가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놓으면서까지 거래세를 놓지 못하는 건 세수 욕심 때문이다. 증권거래세는 최근 3년간 평균 5조원가량씩 걷힌 안정적 세수다. 주식 거래가 급증한 올해는 곱절 가까이 늘어난다. 정부 입장에서 거래세를 없앨 경우 수조원의 세수를 포기해야 한다. 본인 것은 꼭 쥔 채 상대방 것을 더 뺐으려는 건 도둑놈 심보에 지나지 않는다. 올해 초까지 국회 자본시장특위 위원장을 지냈던 최운열 전 민주당 의원 조차도 "거래세와 양도세는 서로 대체 관계에 있어서 보통 외국에서도 둘 중 하나만 남겨 놓는다"며 "양도세를 새로 도입하려면 거래세는 완전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확 늙는 나이 따로 있었다…"어쩐지 체력·근력 쭉...
징세는 과세 주체인 국민이 감내하고 신뢰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마땅하다. 세금은 거위 깃털 뽑듯 해야 한다는 콜베르의 말이 수 백년이 지나도록 회자되는 이유를, 정부는 이번 기회에 다시금 되새겨보기 바란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