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은 사퇴하고 美는 탈퇴 윽박'…최대 위기 봉착한 WTO(종합)
세계 자유무역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세계무역기구가 설립 25년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해 12월11일부로 WTO 상소기구 위원 3명 중 2명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WTO는 무역분쟁 심의를 할 수 없게 됐다.
WTO 상소기구 위원은 총 7명으로 구성돼있으며, 제소된 무역분쟁을 심의하기 위해서는 3명의 위원이 필요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계속해서 위원 임명을 거부해왔다.
중재·분쟁 조정 기능 상실에 무용론 확산
트럼프 "WTO 끔찍하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세계 자유무역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세계무역기구(WTO)가 설립 25년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각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한데다 G2인 미ㆍ중간 갈등이 또다시 촉발되면서 조정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WTO가 끔찍하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14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호베르토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은 이날 열린 비공식 WTO 대표단 화상회의에서 올해 8월말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의 임기 만료일 보다 일년 먼저 사퇴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아제베도 사무총장은 개인적 사유로 그만둔다고 밝혔지만 미국의 압박 때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제베도 사무총장의 사임의사 발표 소식에도 WTO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다.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WTO는 끔찍하다. 우리는 아주 나쁜 대우를 받아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WTO가 미국을 망친다"며 미국의 탈퇴를 언급해왔다.
급기야 미국 의회에서는 WTO 탈퇴법안이 상정되기도 했다. 조쉬 하울리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달 초 미국의 WTO 탈퇴 결의안을 의회에 상정했다. 미 정치전문매체인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국에서 WTO 탈퇴법안이 발의된 것은 지난 2000년과 2005년 두 차례 뿐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첫 사례다.
WTO의 위기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이 최대 적으로 규정한 중국이 WTO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고 있는 점이 미국으로서는 눈엣가시였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더욱 노골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에서 중국을 개발도상국으로 대하기 때문에 중국은 미국이 얻지 못하는 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WTO가 끔찍하다고 한 이유를 설명했으며 하울리 의원은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을 통해 "WTO는 공산주의 중국을 풍요롭게 하는 한편, 미국의 제조업을 해외로 보내버렸다. 공급망을 훼손하고 미국의 일자리를 뺏아갔다"며 "미국 안보의 큰 위협인 중국을 막기 위해 미국의 경제를 재건하고 노동자가 살아나야하며, 이를 위한 첫걸음은 WTO 탈퇴"라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해 7월 WTO에 제소돼있던 미ㆍ중 상계관세 분쟁에서 중국의 승소는 WTO의 위기를 더욱 부추겼다는 평가다. 당시 WTO의 최고 심의기관인 상소기구는 미국이 2012년부터 중국에서 수출하는 태양광제품과 종이, 철강 등 22개품목에 반덤핑ㆍ반보조금 상계관세를 부과한 것에 대해 미국이 WTO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보복 관세조치를 할 수 있다고 판정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WTO 상소기구 위원임명을 거부했다. 지난해 12월11일부로 WTO 상소기구 위원 3명 중 2명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WTO는 무역분쟁 심의를 할 수 없게 됐다. WTO 상소기구 위원은 총 7명으로 구성돼있으며, 제소된 무역분쟁을 심의하기 위해서는 3명의 위원이 필요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계속해서 위원 임명을 거부해왔다. 상소기구 위원은 164개 회원국의 인준을 받아야 임명되며 임기는 4년, 재선임되면 8년까지 할 수 있다.
상소기구 마비에 이어 각료회의도 중단됐다. WTO는 다음달 8일 카자흐스탄에서 열리기로 계획됐던 '제12차 WTO 각료회의 (MC12)'에서 상소기구 정상화 문제를 논의코자 했지만 이마저도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지난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을 발표하면서 카자흐스탄 정부와 WTO는 각료회의 개최를 연기한다고 했는데, 현재까지도 연말이나 내년 6월 코로나19 사태가 가라앉은 이후 재개하기로 합의했을 뿐 구체적인 날짜를 정하지 못했다. 통상 전문가인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에 대해 "WTO에는 입법, 행정, 사법 기능을 모두 갖고 있는데 현재는 모든 기능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으로 세계 교역량이 급감하면서 WTO 무용론은 더욱 설득력을 얻을 전망이다. WTO의 무역전망보고서에서 올해 2분기 세계 무역량은 전년동기대비 27%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분기 세계상품의 교역가치가 1분기 대비 26.9%, 전년동기 대비로는 29.3%까지 크게 줄어드며 국제교역이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WTO 체제 붕괴가 오히려 미국에 손해가 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제프리 쇼트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 연구위원은 "WTO 체제하의 다자간 무역체계는 미국에 큰 이익을 갖다 줬으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야하는 상황에서 WTO 체제를 깨고 개별무역 협상에 나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CNBC에 따르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교체하기 어려운 역할을 해온 아제베도 사무총장의 사임은 안타까운 일이며, 트럼프 행정부는 그의 후임자 선발 과정에 참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로퍼스 예사 미 대외무역위원회(NFTC) 회장은 "WTO 내에서의 개혁을 이어가야하며 코로나19 이후 나타나고 있는 보호주의 물결에 맞서싸울 WTO 후임자를 찾는데 미국 정부가 주력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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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무역기구(WTO) : 전세계 무역 장벽을 낮추고 자유무역체제 확산을 목표로 1995년 1월1일 설립됐다. 세계2차대전 이후 관세장벽 철폐를 위해 체결됐던 관세협정(GATT) 및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 이행을 감시하고, 국가별 무역분쟁을 조정하는 국제기구로 출범했다. 76개 회원국으로 출범한 WTO는 164개국(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입국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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