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시대를 짊어진 재상: 백사 이항복 종가 기증전' 개최
'이항복 호성공신 교서'·'이항복 호성공신 초상'·'천자문' 등 공개

이항복 호성공신 초상

이항복 호성공신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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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는 임진왜란 때 자기를 의주까지 보호하며 따라온 신하에게 ‘호성공신(扈聖功臣)’ 칭호를 내렸다. 세 등급으로 구분해 수여했다. 1등에는 이항복과 정곤수가 이름을 올렸다. 선조는 이들과 그 부모·처자에게 각각 세 개의 관등 계급을 더해줬다. 아울러 반당(호위병) 열 명, 노비 열세 명, 관노비 일곱 명, 전(田) 150결, 은자(銀子) 10냥, 내구마(임금의 소용을 위하여 기르는 말) 한 필을 줬다.


현존하는 유일한 호성공신 1등 교서인 ‘이항복 호성공신 교서’ 등 이항복 관련 자료들이 대중에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백사(白沙) 이항복(1556~1618) 종가 기념품을 공개하는 ‘시대를 짊어진 재상: 백사 이항복 종가 기증전’을 9월13일까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에서 한다고 6일 밝혔다. 임진왜란 극복에 큰 공을 세운 이항복의 삶을 두루 조명하는 전시다.

이항복 호성공신교서

이항복 호성공신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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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복은 스물다섯 살에 대과에 급제해 관직을 시작했다. 서른일곱 살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도승지로서 선조의 피란길을 호위했다. 병조판서를 맡아 군사행정에서 우수한 역량을 발휘했다. 특히 명나라 지원군 요청을 주장해 전세를 뒤집는 데 일조했다. 정유재란 때 명나라 관리 정응태가 조선이 일본과 내통한다고 모함하자 직접 북경에 가서 이를 해명하는 등 외교에도 힘썼다. 공적을 인정받아 호성공신 1등(1604), 위성공신 1등(1613) 등 다섯 번이나 공신(功臣) 반열에 올랐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11월 경주 이씨 백사공파 15대 종손 이근형 선생이 기증한 자료 열일곱 건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자료 열두 건을 선보인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항복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인목왕후 폐모론에 반대하는 등 나라의 안위를 중시한 진정한 재상”이라며 “종가 기증품이 더해져 그의 정치적 역할은 물론 개인적 삶, 문예 세계, 후대 평가 등을 두루 살필 수 있다”고 했다.

이항복필 천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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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기증품은 ‘이항복 호성공신 교서.’ 현존하는 유일한 호성공신 1등 교서다. 당대 명필인 석봉 한호(1543~1605)가 글씨를 썼다. 선조는 교서에 “사람들은 그대를 믿고서 조금 안정되었고, 조정에서는 그대를 의지하면서 소중하게 여겼다”라는 말을 담았다. 원본은 아니다. 똑같이 작성해 보관한 부본(副本)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항복이 받은 교서 원본은 병자호란 때 소실됐다”며 “부본은 증손 이세필(1642~1718)이 한호의 집안에서 부본을 구해 충훈부에 올려 국새를 받아 보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선 공신교서의 중요성과 후손들의 보존을 위한 노력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평했다.


호성공신 자료로는 ‘이항복 호성공신 초상’도 있다. 마흔아홉 살 때 모습으로, 후대에 옮겨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박물관 관계자는 “공신상은 후손이 귀하게 보존하였으며 초상이 낡으면 이를 옮겨 그려 다시 모시는 것이 전통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쉰여덟 살 때 얼굴이 담긴 ‘이항복 위성공신 초상’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짐작된다. 박물관 관계자는 “두 공신상을 비교해 보면 얼굴의 주름이 늘어나는 등 9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항복이 손수 쓴 제례에 대한 글

이항복이 손수 쓴 제례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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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는 이항복이 손수 작성한 ‘천자문’도 진열된다. 붓으로 쓴 천자문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다. 이항복은 손자 이시중을 위해 썼다. 한 자씩 공들여 쓴 글씨는 골격이 굳세고 획이 날렵하다. 당부의 말에는 “50 먹은 노인이 땀을 닦고 고통을 참으며 쓴 것이니 함부로 다뤄서 이 노인의 뜻을 저버리지 말 거라”라고 썼다.


‘이항복이 손수 쓴 제례에 대한 글’도 이항복의 드문 친필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중국 경전인 ‘예기(禮器)’에서 제사의 본질과 관련한 글만 선별해 적었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항복은 후손들이 제사 때 절하는 의식을 무턱대고 따라할 뿐, 그 의의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옛 경전에서 뽑은 글을 병풍으로 만들어 평소에 익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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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이밖에도 이항복이 젊은 시절 당시(唐詩)를 공부하기 위해 쓴 글을 한데 모은 ‘백사수적첩(白沙手蹟帖)’, 이세필 초상화, 이경일 ‘유서(諭書)’ 등을 소개한다. 이항복의 문집인 ‘백사선생집(白沙先生集)’과 중국 노나라의 역사서 ‘노사영언(魯史零言)’, 사례에 관한 정신적인 계몽서 ‘사례훈몽(四禮訓蒙)’ 등도 공개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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