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ETN 투자…FIRE족이 불질렀다
[아시아경제 이민지 기자] "유가 당연히 오르겠단 확신이 있었죠,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서 가진 돈 다 여기에 다 넣고 오르기만 기다렸는데…" (34세 투자자 A씨)
"롤오버, 지표가치, 괴리율…원유 투자하라고 해서 믿고 샀는데, 이렇게 복잡한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60세 투자자 B씨)
유가 하락이 화근이었다. 개미들은 듣도 보도 못한 원유가격이 눈앞에 나타나자 원유 레버리지상장지수증권(ETN)에 홀린 듯이 빠져버렸다. 일반 주식보다 어려운 구조를 가진 파생상품임에도 그저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말에 초보 투자자들까지 무턱대고 투자에 나섰다. 여기에 비트코인ㆍ부동산투자 광풍을 주도했던 '파이어(FIREㆍ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까지 가세하면서 시장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이달 22일까지 개인 투자자들은 5548억원어치의 원유레버리ETN을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18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전일대비 24.42% 폭락한 20.37달러를 기록하자 개인들의 매수세는 더 강해졌다. 이전까지 하루 150억~160억원 규모로 매수했던 개인들은 19일 하루에만 479억원어치의 원유 ETN을 사들였고 이후 20, 21일에도 각각 294억원, 317억원어치를 매수했다. 하한가가 속출한 27일 개인들은 6억31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 기간 ETN의 괴리율은 개인 간의 거래만으로 1000%를 찍었다. 유동성공급자(LP)는 4억9200주를 추가로 상장해 지표가치(IV)와 상품가격을 일치시키려 했지만 무섭게 달려드는 개인들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ETN시장에는 이른바 '한방'을 노린 투자자들이 대거 몰렸다. '지금이 한방 벌 수 있는 기회다'라는 심리가 팽배해지면서 일찌감치 돈을 모으려는 젊은 투자자들은 마이너스통장까지 만들어 시장에 들어섰다. 적극적인 투자성향이라는 A 씨는 "ETN에 원유 상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가가 떨어진 직후 레버리지상품에 베팅했다"며 "비트코인 경험도 있었고 언젠가 오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괴리율이 1000%를 넘어서는 것을 보고 투자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유가는 언젠간 오른다는 확신만으로 빚까지 내서 들어온 투자자들도 많다. 주식 거래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투자자가 대출을 받아 레버리지 파생상품을 산 경우도 있었다. B씨는 "집을 담보로 1억6000만원 정도 대출을 받아 2개 상품에 돈을 넣었다"며 "주변에서 원유 상품을 지금 사야 한다고 해서 처음으로 계좌를 만들어 이 상품을 샀는데 지금은 시장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상품구조에 대해 개인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파생상품 투자에 나선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롤오버, 지표가치, 이론가, 괴리율 등 ETN 투자를 위해 필요한 필수적인 정보들을 숙지하지 못한 채 투자에 뛰어든 것이다. 투자자 C씨는 온라인 종목게시판에서 "유가가 50% 하락할 경우 기초가치가 0일 때 전액손실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두루뭉실한 설명만 있을 뿐 투자자들에게 자세한 고지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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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잇따른 경고에도 개인들의 원유 ETN 투자 광풍이 진정되지 않자 시장 진입문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선물 옵션 투자자처럼 사전교육 제도를 도입해 ETN의 비정상적인거래를 막겠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오죽하면 개인들에게 사전교육까지 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겠느냐"며 "동학개미가 날개를 달았는데 여왕개미가 아니라 불나방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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