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 조용필 노래 '허공'이 왜 거기서 나와
연극 '리어외전''조치원 해문이' 셰익스피어 비극 비틀어 웃음 폭발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혼란에 빠진 자여 그대 이름은 애비로다." "살든지 뒈지든지 매조지를 져야 되여."
낯설지 않은 대사들인데 뭔가 어색하다.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희곡 '햄릿'의 대사를 비틀었다. 원래 대사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다.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리어외전'과 '조치원 해문이'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비틀어 웃음을 준다. 리어외전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리어왕'을 각색했다. '조치원 해문이'는 햄릿의 인물과 설정을 2009년 특별시 결정을 앞둔 세종시 조치원으로 기막히게 옮겨 왔다.
◆조용필 '허공' 부르는 리어왕=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리어외전 2막 중 리어왕이 읊조리는 넋두리다. 가왕 조용필이 1985년 발표한 가요 '허공'의 노랫말을 그대로 가져왔다. 고선웅 연출 특유의 비틀기가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다.
허공의 노랫말은 절묘하게 리어왕의 마음을 대변한다. 리어왕은 쪽방촌 신고식에서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 극 초반 왕의 위엄을 보여 준 망토는 사라지고 쪽방촌 선배들이 그나마 걸치고 있던 누더기마저 벗기려 든다.
두 딸에게 노후를 부탁하며 브리튼 땅도 물려줬건만 잇속 챙긴 두 딸은 냄새 난다며 리어왕을 문전박대했다. 현명해지기 전에 늙어버렸다는 대사에서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어쩌랴. 자식들이 영악해졌으니 리어왕도 자기 잇속을 따졌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온다.
리어외전은 고 연출 특유의 언어유희와 비틀기가 돋보이는 연극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대사 '아임 유어 파더(I'm Your Father)'가 그대로 옮겨진 포스터부터 웃음을 유발한다.
리어왕의 할아버지가 만들었다는 '리어카'를 등장시키는 장면에서도 고 연출의 언어유희는 빛을 발한다. 하지만 빈털터리가 된 리어왕이 무대 위에서 리어카를 끌며 도는 장면은 한바탕 웃음 뒤 애잔함을 남긴다.
고 연출은 오래 사는 부모와 제 살기 바쁜 자식들의 충동담을 그리고 싶었다고, 그래도 효도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래서 극은 "이렇게 살지 말자"는 대사로 시작해 "이렇게 살지 말자"는 대사로 끝난다.
◆충청도 사투리 쓰는 햄릿= 특별시 지정에 앞서 땅값이 들썩이는 세종시. 이를 배경으로 햄릿을 떠올린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조치원 해문이가 왜 2014년 '제4회 벽산희곡상'을 받았는지 쉬이 납득이 간다.
들썩이는 땅값은 죽은 형의 뒤를 이어 마을 이장으로 등극(?)한 '이만국'이 왕과 다름없는 권력자로 행세하게 되는 배경이다. 이만국은 햄릿에서 형수인 햄릿의 어머니와 결혼해 권력을 거머쥔 클로디어스 왕인 셈이다.
극은 해문이의 친구들이 늦은 밤에 술 마시다 마을회관 근처에서 해문이의 죽은 아버지 귀신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성벽에서 햄릿 왕의 귀신을 보는 병사들의 모습이 그대로 재연된 것이다. 조치원 해문이는 이처럼 땅값이 들썩이는 세종시를 배경으로 햄릿의 인물과 설정이 효과적으로 대입돼 객석의 웃음을 유발한다.
다만 웃음에 대한 욕심이 약간 과한 듯한 느낌은 아쉽다. 조치원 해문이는 이미 설정된 상황과 사투리 쓰는 인물들만으로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잔재미를 노리다 인물과 상황이 다소 어색해지는 부분이 있다. 해문이의 연인 '오피리(햄릿의 오필리어)'의 비극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장면도 다소 지나치게 무거운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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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외전'과 '조치원 해문이' 두 작품 모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예방 차원에서 '거리두기 좌석제'를 시행한다. 객석을 절반으로 줄였다. 공연 횟수도 줄였다. 리어외전은 11회에서 8회로, 조치원 해문이는 10회에서 6회로 줄였다. 두 작품 모두 오는 19일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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