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 시즌2

[이종길의 영화읽기]성적은 배신해도 응원은 배신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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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프리미어리그(1부)에서 뛰는 선수는 주당 평균 6만4000파운드(약 9794만원), 챔피언십(2부)은 1만4000파운드(약 2142만원), 리그 원(3부)은 2000파운드(약 307만원)를 받는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 시즌2 2화 도입부에 나오는 자막이다. 선덜랜드 AFC는 2016-2017시즌까지 열 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에서 경쟁했다. 그러나 성적 부진으로 2017-2018시즌은 챔피언십, 2018-2019시즌은 리그 원에서 보냈다.

선덜랜드 AFC는 1부 리그에서 여섯 번 우승한 명문 클럽이다.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지지는 상당하다. 챔피언십 강등에도 평균 3만1706명이 스타디움오브라이트(홈구장)를 찾았다. 프리미어리그 10위권 수준이다.


애초 '죽어도 선덜랜드' 제작진은 뜨거운 응원에 힘입어 선수단이 재도약하는 과정을 담으려고 했다. 그러나 시즌1에서 선덜랜드 AFC는 패배를 거듭한 끝에 리그 원으로 강등된다. 시즌2에서도 성적은 반등하지 않는다. 간판급 공격수 조시 마자의 이탈 등 악재가 겹치면서 승격을 향한 꿈은 산산조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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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지인 선덜랜드 주민들은 깊은 슬픔에 빠진다. 그들은 부진이 계속돼도 응원을 멈추지 않는다. 관중석에 옹기종기 모여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른다. "선덜랜드 AFC. 단연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팀."


이들에게 선덜랜드 AFC는 자부심이자 정체성이다. 응원으로 공동체 의식을 다지며 유대 관계도 강화한다. 희망이 보일수록 단결력은 더 강해진다. 브래드퍼드시티와 가진 박싱데이(12월 26일) 경기가 대표적인 예. 영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스타디움오브라이트(4만8707명 수용)에 무려 4만6039명이 몰린다. 경기 내내 박수와 환호로 선수단의 사기를 북돋아 준다.


인구 약 18만명의 공업 도시 사람들은 왜 축구에 열광할까. 데이비드 골드블라트가 쓴 '축구는 세계사 - 공은 둥글다'는 빅토리아 시대(1837~1901) 후기로 거슬러 올라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당시 영국에서 다른 여러 형태의 노동계급 도시문화 중에 오직 축구만이 신분상으로도 지역 공동체, 산업 직종, 고용주, 노동조합원 등으로 갈려 있고 그 안에서도 출신, 정체성, 목적 등이 서로 다른 그런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한 데 모을 수 있게 해줬다. 축구만이 그들을 더 크고 포괄적인 지리적 배경과 정체성을 중심으로 하나가 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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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노동계급의 지역주의가 전국적인 틀과 조직에 편입되는 데 일조했다. 당시 노동계급과 그들의 대표 단체들은 정치ㆍ경제적 토론장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더 넓은 지평을 열고 그들이 차지해야 할 정당한 지위를 주장했다. 전국 리그와 컵 대회에서 자기 지역 축구팀 응원은 이를 가장 정확하고 간단하게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영국 언론인이자 소설가 찰스 에드워즈는 1896년 쓴 수필 '새로운 축구 마니아'에서 당시 열기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지난 시즌 동안 세 번이나, 작가는 맹렬한 눈보라 속에서 열리는 경기를 목격했다. 그 중 한 번은 운동장에도 눈과 진눈깨비가 발목까지 올라올 정도였고, 눈이 어찌나 심하게 내렸는지 팬들의 어깨와 모자 위에 1인치나 되는 눈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 빽빽이 모여 있어서 그 눈을 떨어버리려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 사람들은 무슨 명약이라도 있어서 단순한 감기로부터 파생될 수도 있는 질병들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 아마 그들 중 한 명 이상은 연이은 토요일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무덤 속에 깊이 잠들어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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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응원은 '죽어도 선덜랜드'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려는 의지로 나타난다. 선덜랜드는 조선업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그러나 해외 도시들과 경쟁에서 밀려 1988년 모든 조선소가 폐업했다. 주요 수입원 가운데 하나였던 광산업과 유리세공업도 1994년과 2007년 각각 막을 내렸다. 뒤늦게 자동차 생산기지로 탈바꿈했으나 어디서도 옛 영화를 찾아볼 수는 없다.


'죽어도 선덜랜드'는 열악해진 삶을 다분히 관조적으로 바라본다. 선덜랜드 AFC를 향한 시선도 다르지 않다. 선수단과 프런트의 노력을 비추는 과정에서 중소도시 축구 클럽팀의 한계와 주먹구구식 경영, 리더십 부재 등이 여실히 드러난다. 스튜어트 도널드 구단주가 1월 이적시장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임박한 마감 시간에도 소득이 없자 지역 라디오는 일침을 가한다.


"이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마감 시간까지 간 적이 있었나 싶어요. '젠장, 당장 계약 못 하면 정말 큰 일인걸' 할 정도로요.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겠어요. '여기요, 돈을 얼마든 줄 테니 그 선수를 주세요'라고 하는 것 외에는요. 스튜어트 도널드는 영국 최고의 구단 가운데 하나를 운영하기에 너무 순진하고 무지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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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무리수를 둔다. 위건 애슬레틱 FC의 공격수 윌 그리그를 리그 원 역사상 가장 높은 이적료(300만파운드)로 데려온다. 그리그는 선덜랜드 AFC 유니폼 차림으로 리그 원에서 네 골을 넣는 데 그친다. 2019-2020시즌에는 고작 한 골을 기록한다.


영국의 적잖은 클럽들은 노동자 등 개인 주주들을 지닌 유한책임 회사다. 선덜랜드 AFC에서 나타나듯 주주 개개인은 감상적 차원의 지분만 약간씩 소유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들의 잠재적 투표권을 적극 사용하지 않는다. 가장 많은 지분이 있는 도널드 같은 주주의 결정을 믿고 따를 뿐이다.


이런 체계에서 재정적 이익은 그들에게 주된 보상이 될 수 없다. 오늘날 영국 축구는 오락거리를 넘어선 대규모 산업이다. 주주들이 지역 내에서 명성과 지위를 얻기 위해 실속 없는 자리만 차지하던 시절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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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덜랜드 AFC는 변화에 발 맞추지 못해 도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주주들부터 급진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로 사회현상을 유도할 때다. 그들이 지난 100여 년 동안 축구 문화와 인구 구성에서 부인할 수 없는 흔적을 남겼듯이 말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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