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에게는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병아리 털처럼 순하고 병아리 눈동자처럼 동그랗습니다 다정은 손을 내밀고 다정을 담은 그릇에는 모서리가 없습니다 다정에는 가시가 많습니다만 너무 많은 가시에서는 가시를 느낄 수 없습니다 언뜻 본 다정은 안경닦이 같습니다 어떤 다정은 너무 커서 다정의 날카로운 발톱이 흙 언덕으로 보입니다 여력이 있다면 한 평의 땅을 사는 것보다는 다정을 구입하는 게 낫습니다 다정은 소모되지 않고 늘일 수 있으니까요 주의 사항은 있습니다 유통기한은 없습니다만 쉽게 흘릴 수 있습니다 다정을 과자 봉지에 넣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다면 놀라울 것입니다 한 봉지의 다정을 담아 건네면서 달의 이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나는 다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중독은 아니고요 감염된 건 분명합니다 내게는 갓 낳은 달걀 같은 다정이 또 생겼습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병의 씨앗입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다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의 다정이 싹틀 때가 오면 풀잎들처럼 나란히 앉아 봄을 낭비합시다

AD

[오후 한 詩] 다정에 감염되다/이대흠
AD
원본보기 아이콘


■ 나는 착한 사람보다 다정한 사람이 더 좋다. 나는 의로운 사람보다 다정한 사람이 더 좋고, 공명정대한 사람보다 다정한 사람이 조금 더 좋다. 똑똑한 사람보다야 다정한 사람이 훨씬 더 좋고, 훌륭한 사람보다는 다정한 사람이 부담 없이 더 좋다. 물론 부자보다 다정한 사람이 더 좋고, 권력자보다 다정한 사람이 더 좋다. 아니 실은 진짜 부자나 권력자는 감히 만나 보지도 못했으니 ‘더 좋다’라고 말하는 건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정한 사람을 만나면 나는 착해지고 의로워지고 공명정대해지고 똑똑해진다. 그리고 훌륭한 사람이 된 듯하고, 부자보다 권력자보다 뭔가를 더 많이 가진 것만 같아진다. 그보다 다정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어느결에 다정해진다. 그리고 나는 다정해진 내가 참 좋다. 오늘 이 시를 읽은 것만으로도 나는 살짝 다정해질 것만 같다. 채상우 시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