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78년 빵에 담긴 땀과 진심의 가치
다큐멘터리 영화 '펠리칸 베이커리'
1942년 개업 4대째 이어진 도쿄 '펠리칸 베이커리'…노하우 전하기보단 꾸준한 맛 유지한 노고 조명
반죽하고 굽는 과정 담담하게 담아…서구에서 흘러들어온 빵도 전통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설파
아사쿠사는 현대화한 도쿄에서 전통적인 색깔을 간직한 곳이다.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센소지. 도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사찰이다. 스미다강에서 어부 형제의 그물에 걸린 관음상을 모시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참배객이 꾸준히 늘면서 조그만 어촌에 지나지 않던 아사쿠사는 에도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시내에는 오래된 맛집이 즐비하다. 1870년 오픈한 소바 전문점 오와리야와 1887년 창업한 덴동(밥 위에 튀김을 올린 덮밥) 전문점 다이코쿠야가 대표적인 예. 스키야키(일본식 전골찌개)를 파는 이마한 혼텐도 청일전쟁 때 고기 통조림 납품을 시작으로 5대째 이어져 온다.
다큐멘터리 감독 우치다 순타로는 급변하는 시대에 아사쿠사처럼 전통 색깔을 간직한 가게를 조명한다. 그런데 카메라로 비추는 곳은 빵집이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펠리칸 베이커리.' 1942년 개업해 4대째 이어져 온다. 빵집은 서구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가게다. 일본식 식생활과 거리가 먼 듯해 고개를 갸웃할 수 있다. 하지만 메이지유신 뒤 식생활 변화의 추이를 살펴보면 일본식 식생활 개념은 무색해진다.
일본에 빵이 소개된 때는 1543년으로 추정된다. 에가와 다로자에몬이 1842년 보존ㆍ이동이 편리한 군량으로 여기면서 대량 생산됐다. 메이지유신 정부는 한때 군대 급식을 빵으로 지급했다. 군인들이 쌀밥만 먹어 시달린 각기(脚氣)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인에게 빵이 처음 보급된 곳은 요코하마의 외국인 거류지. 우치미 헤이키치가 1860년 일본인 최초로 빵집을 열었다.
펠리칸 베이커리가 개업한 1940년대에 빵은 일본에서 주식으로 통용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미국산 밀가루를 대거 수입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오랜 전쟁의 여파로 국토가 황폐해지고 노동력도 저하됐다. 기후마저 좋지 않아 극심한 식량부족을 겪었다. 밀가루 과잉 생산으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은 대대적인 수출에 나섰다.
분식 문화는 금세 정착했다. 일본인은 대체로 외국에서 들여온 식자재나 음식에 대한 거부반응이 적다. 오히려 오리지널 레시피를 고집하지 않고 자기 입맛대로 조리법이나 맛 내는 방법을 바꿔버린다. 돈가스나 카레가 대표적인 예다.
식문화 칼럼니스트 우오쓰카 진노스케는 저서 '일본 요리 뒷담화'에서 "빵을 먹는 것이 서구식 식생활이 아니라 빵에 버터를 발라 먹는 것, 버터를 녹여 오믈렛을 만들어 먹는 것이 서구식 식생활"이라며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메이지 유신 뒤 일본인은 많은 양식을 받아들였습니다. 오래된 요리책을 조사하면서 일본인이 외국에서 온 식재료, 조리법, 각종 요리를 비교적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예부터 사용한 식품으로 만든 요리만 일본 요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인이 먹어온 요리 가운데 순수 재래 식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따져보면 쌀도 외래 식품이니까요."
'펠리칸 베이커리' 도입부에도 비슷한 입장이 드러난다. 아사쿠사의 고풍스러운 풍경을 나열하다가 한 백인 남성의 샤미센(일본 전통 현악기) 연주 모습을 보여준다. 능숙한 솜씨로 연주한 그는 일본이 서구 문물을 그들의 것으로 곧잘 변형한다고 칭찬한다.
"빵은 캐나다나 미국 같은 서양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펠리칸 베이커리 같은 빵은 없어요. 부드러워요. 포장지에서 꺼낼 때부터 기분이 좋아지죠. 먹는 순간까지 감동을 주는 이 동네의 자랑이에요."
우치다 감독은 맛있는 빵 만드는 노하우를 전하지 않는다. 특유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78년 동안 꾸준히 일해온 제빵사들의 노고에 초점을 맞춘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굽는 과정을 지루할 만큼 오래 보여준다. 노동하는 얼굴에는 드라마틱한 요소도 없다.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담을 뿐이다.
사실 보기 드문 풍경이다. 빵집은 기본적으로 박리다매 원칙에 따라 상품을 만든다. 만들기 편하고 실패 확률이 낮은 제조법을 택하곤 한다. 그래서 맛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진다.
펠리칸 베이커리는 맛에 집중하기 위해 판매 상품을 식빵과 롤빵으로 한정했다.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재료 배합을 조정하고 은은한 소금 맛과 빵 본연의 단맛, 쫀득쫀득한 탄력, 갓 구운 바삭한 식감을 살리는 데 매진한다. 도쿄제과학교 나카지마 신지 교수는 그렇게 만들어진 빵이 재빵업계의 재산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빵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대부분이 먹을 것이라고 하겠죠. 틀린 건 아니에요. 그런데 빵을 만드는 사람에게 묻는다면 살아있는 것이라고 많이들 답할 거에요. 효모를 사용하기 때문에 만들면서 여러 번 변하거든요. 만드는 사람의 기분이 투영되는 것처럼요. 그래서 건실한 생각을 가진 제빵사가 빵을 만들면 모양 이상의 풍미와 맛이 구현됩니다. 펠리칸 베이커리의 빵이 맛있고 자꾸 먹고 싶어지는 이유는 만드는 사람이 반죽을 생명체로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심껏 다루어 맛있는 빵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펠리칸 베이커리에서 40년 넘게 일한 나기 히로유키는 제빵사를 '평생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손님으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날마다 반죽에 대해 연구하고 빚고 또 빚는다. '팔리는 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선대 사장 와타나베 가즈오의 철학을 그대로 실천한다.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십년을 해보니 손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더라고요. 결국 지나고 보니 그게 나를 위한 것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요. 손님을 위하면 결국은 나에게 좋게 돌아와요. 신용으로 이어지죠."
2015년 가업을 이어가기 시작한 와타나베 리쿠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가게 규모를 넓힐 법도 하지만 여전히 납품에 주력한다. 단골 손님과 관계를 돈독히 하며 지역사회에 이바지할 길도 모색한다. 그는 제빵 실습생인 한 여중생의 말마따나 사람 간 커뮤니케이션을 배우는 과정에 있다. 선대의 사상과 철학을 그대로 이어받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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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감독은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 것 같다. 영화 막바지에 센소지의 풍경을 삽입했다. 서구에서 흘러들어온 빵이라도 전통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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