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청약·규제가 낳은 부동산 머니게임<上>

'무주택=서민' 프레임이 역차별 양산…'청무피사' 신조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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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유리 기자, 최동현 기자] "어차피 로또인데 무조건 넣고 봐야죠.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지난달 28일 일반 1순위 접수를 받은 위례신도시 '중흥S클래스'에 청약한 권모(48ㆍ성남)씨는 지난해부터 수도권 인기단지만 골라 청약을 하고 있다. 청약 때마다 번번이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는다. 한번만 당첨되면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얻는 대박이 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아파트 청약시장이 서민의 내집마련 수단을 넘어 투기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너도나도 돈되는 아파트에만 몰리면서 많게는 수만명의 청약자가 특정 단지에 몰려는 쏠림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세자릿수 경쟁률이 속출하면서 '청무피사'라는 신조어까지 나돌고 있다. '청약은 무슨… 피(프리미엄)주고 사'란 자조 섞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지난해 전국 아파트 청약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곳은 11월 공급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르엘대치' 였다. 31가구 공급에 6575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이 212대 1에 달했다. 인근 아파트 같은 면적의 실거래가와 비교하면 분양가가 절반에 불과한 것이 과열경쟁의 배경이었다. 이같은 청약 로또 열기는 서울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경기 수원 팔달구 매교동 '매교역 푸르지오SK뷰'에는 인터넷 청약 도입 이후 최대 규모인 15만6505개의 청약통장이 쏟아지기도 했다.


자료사진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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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택=서민', 이분법 프레임에 갇힌 청약제도= 전문가들은 현행 청약제도가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주택자를 서민과 동일시하는 낡은 이분법적 사고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시대적 변화나 구매자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줄 세우기도 청약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현재 청약제도에서 당첨의 가장 중요한 잣대는 '주택소유' 여부다. 서울에선 무주택자가 아니면 청약제도를 통한 내집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청약제도의 핵심인 가점제는 ▲무주택 기간(32점) ▲부양 가족 수(35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을 합산해 점수가 높은 순으로 입주자를 선정한다. 이를 감안하면 아무리 싼 집이라도 1주택자는 인기지역 당첨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평균 당첨가점이 1분기 43.6에서 2분기 53.4, 3분기 54.7, 4분기 61.5로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 기준 85㎡ 초과 중대형은 절반을 추첨제로 뽑지만 이 역시 4분의3은 무주택 몫이며 나머지 4분의1 마저 무주택 낙첨자와 1주택자가 경쟁해서 당첨자를 가린다.


'무주택=서민'이란 이분법적 잣대가 역차별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청약 기준에선 매매 시세가 3억원인 외곽 주택을 보유한 1주택자보다 강남권 10억원대 전세를 사는 무주택자가 '서민'이라는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서울 구로구 1주택자 이모(36)씨는 "외곽의 저렴한 집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내집을 키워 나가겠다고 생각하고 집을 장만한 게 후회된다"며 "참여조차 제한된 로또 청약 시장에 상대적 박탈감만 커진다"고 말했다.


심지어 모든 주택을 천편일률적으로 청약제도의 틀 안에 가두다 보니 수십억원짜리 고급주택도 무주택자에게 우선 분양권을 주는 반시장적 질서를 만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급주택을 우리 같은 청약제도로 공급하는 곳은 대한민국 뿐"이라며 "최소한 일정가격 이상의 주택 분양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거 변화도 반영못해…커지는 개선 요구 목소리= 현 청약가점 산정방식이 나이와 부양가족 수가 많을수록 유리하게 짜여져 있다는 점은 젊은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인가구가 전체 가구의 30%를 차지하는데다 사실혼(동거), 비혼족, 딩크족(의도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맞벌이 부부) 등 새로운 유형의 가족 상(像)이 출현하고 있지만 이를 제도에 담지 못한다는 것이다. 외벌이 신혼부부 차모(37)씨는 "청약가점이 낮은 2030세대에 새 아파트는 그림의 떡"이라며 "신혼부부 특별공급에도 관심을 가져봤지만 외벌이에 자녀가 2인이상 있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포기한 지 오래"라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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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모순된 청약제도가 초래하는 각종 사회적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하고 제도 전반에 관한 깊은 재검토와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청약제도가 기성세대에 유리하게 짜여 있어 젊은층이 박탈감을 느끼고 결혼과 출산도 하지 않게 되는 큰 사회적 문제가 초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새로운 가구 구조와 거처 유형 등을 충분히 고민하고 새로운 청약제도의 틀을 짜야한다"라며 "정부차원에서도 주거의 공급 방식과 배분 원칙을 재점검하고 새로운 기준과 원칙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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