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윤석헌, 키코, 그리고 일류금융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2014년 4월. 권오현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대표)은 '삼성 백혈병 사태'와 관련해 공식 사과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으로 숨지거나 투병중인 직원, 유가족들에게 사과와 함께 보상 절차 착수를 약속했다. 2007년 삼성 반도체 라인 공장 직원이 백혈병으로 사망한 지 7년만이었다. 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매듭지어야만 더 큰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참모진의 조언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격 수용한 데 따른 결과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환율 급등으로 수많은 중소기업을 도산시킨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배상 논란을 보면 6년 전 삼성의 결단이 떠오른다. 키코와 삼성 백혈병 사태는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백혈병은 사람의 건강 또는 생명을 앗아갔고 키코는 중소기업을 무너뜨렸다는 점, 삼성과 은행 모두 법률적 배상 의무는 없지만 이 사태에 따른 도의적 책임이 요구된다는 점에서다. 차이점은 반도체와 백혈병은 인과관계에 대한 논란이 있는 반면 키코로 인한 기업 도산에는 상품을 판매한 은행의 책임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삼성은 당국의 권고 없이, 은행은 '키코=사기'로 보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에게 등 떠밀려 배상에 나서야 하는 점도 다르다.
키코는 '과거사'다. 2013년 대법원의 불완전판매 인정 판결 후 잠자던 문제를 소비자보호 원칙을 강조하는 윤 원장이 2018년 취임 직후 5년 만에 재소환했다. 늦었지만 은행의 잘못을 바로잡고 소비자보호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끈질기게 어쩌면 고집스럽게 키코 배상 문제에 매달려왔다. 이 같은 과거사 소환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그러나 신뢰가 근간인 은행이 소멸시효를 거론하며 지난 일이니 덮자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키코는 실물을 지원해야 할 금융이 실물을 망가뜨린 사례다. 애초에 리스크를 감당 못할 중소기업에게 키코를 팔아서는 안됐다. 적어도 대법원이 불완전판매 일부를 인정했을 때 배상을 시작했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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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금융회사들이 '금융의 삼성전자'를 꿈꾸고 있다. 글로벌 일류기업인 삼성은 세계 최고 경쟁력 뿐 아니라 그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고 있다. 삼성은 백혈병 문제를 매듭지었다. 일류를 꿈꾸는 은행들은 키코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우리은행은 12년 만에 키코 배상을 가장 먼저 전격 수용했다. 키코 배상액이 가장 많은 신한은행은 이날 오후 이사회 결정을 앞뒀다. 국내 은행들은 이제 '1등'을 넘어 '일류'를 외치고 있다. 오는 7일 키코 배상 수락 결정 시한을 앞두고 줄줄이 이어질 은행의 결단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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