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한편 정성스럽게 엮어 다른 시각의 한편을 보다
민음사 인문잡지 '한편' 창간…원고지 30매 안팎 단편 10편 실어
1·5·9월 1년에 3회 정기 간행물…필진들 서로 글 읽으며 공유·검증
1980년대생 편집인 3인방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글 지향"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사르트르와 같은 권위있는 지식인은 이제 나오지 않는다."
민음사가 지난 14일 출간한 인문잡지 '한편'의 창간호 머릿글 중 눈에 띈 문장이다. 글쓴이는 민음사 편집부 논픽션팀의 신새벽 과장(32).
"지식인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과거와 달리 권위있는 사상가가 있을 수 없는 시대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한편은 여러 사람의 다양한 시각이 담긴 인문잡지를 지향한다. 창간호에는 '세대'를 주제로 200자 원고지 30매 안팎의 짧은 글 열 편이 실렸다. 필자의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민음사는 2016년 8월 문학잡지 '릿터(Littor)'를 창간했다. 릿터가 자리 잡으면서 비문학 분야 잡지를 발간해보자는 계획이 세워졌고 창간 작업은 논픽션팀 중심으로 지난해 3월 본격 시작됐다. 편집부 문학3팀의 허주미 팀장(37), 편집부 인문교양팀의 이한솔 사원(31)이 합류하면서 한편을 꾸려나갈 편집진의 얼개가 갖춰졌다.
허 팀장은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다"며 "팀에서 다루는 책들이 문학작품이기 때문에 인문학을 살펴볼 기회가 없었는데 한편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 과장은 "문학이 아니면 무엇을 해야 할까 오래 고민했다"면서 "서로 팀도 다른 상황에서 가장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카테고리가 인문이었다"고 밝혔다.
2000년대 초반 인문학의 위기, 인문학의 죽음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후 일종의 반발이랄까.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불거졌다. 하지만 과연 인문학이 부활했을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 인문잡지가 창간된다는 소식에 처음 든 생각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었다.
이 사원은 "필자 중 예전에 글을 실은 잡지가 1호만 나오고 이후 발간되지 않았던 적이 있다며 한편은 잘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도 계셨다"고 전했다.
인문학의 위축 탓인지 필자들을 섭외하는 일은 되레 어렵지 않았다. 허 팀장은 "전체적으로 청탁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됐다"며 "필자들은 글을 게재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사실에 호의적이었다"고 들려줬다.
한편은 무크지(부정기 간행물)가 아니라 과감하게 정기 간행물 형태를 취했다. 1년에 세 차례, 1월, 5월, 9월 발간된다. 장기 발행을 염두에 두고 정기 간행물이라는 부담은 최대한 더는 방향으로 고민하다 연 3회라는 독특한 발간 형태가 된 것이다. 한편은 편집위원 없이 편집자들이 2주에 한 차례 갖는 편집회의에서 의견을 나누고 협업하며 꾸려간다. 또 공동연구의 형식을 취한다.
신 과장은 "필진은 보통 책 나오고 난 뒤 다른 필자의 글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은 같은 호에 참여하는 필자들끼리 초고부터 서로 글을 읽으며 많이 공유 했다. 같은 주제를 다른 관점에서 어떻게 썼는지 살피면서 필자들끼리 서로 검증하는 단계도 거쳤다. 필진이 참여하는 사전 세미나도 진행했다. 서로 의견을 듣고 아이디어를 많이 공유한 뒤 글을 고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사원은 "실제로 글이 발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진 중 다른 분의 글을 자신의 연구에 응용하는 분도 있었다. 잡지 준비 과정에서 연구자끼리 서로 소통하게 하는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 부분에서 성과도 있었고 가능성을 보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민음사가 인문잡지 '한편'을 지난 14일 창간했다. 한편은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글을 지향한다. 창간호에는 '세대'를 주제로 200자 원고지 30매 분량의 글 열 편이 실렸다. 한편은 1년에 세 차례, 1월, 5월, 9월 발간된다. 5월호는 '인플루언서', 9월호는 '환상'을 주제로 다룰 예정이다. 한편을 꾸려나가는 민음사 편집부의 이한솔 사원, 신새벽 과장, 허주미 팀장(왼쪽부터).
원본보기 아이콘창간호의 주제 세대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거진 갈등을 감안하면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한편 편집진 3인방 모두 1980년대생이라는 점에서 같은 세대다. 금융위기 이후 대학에 다닌 세대로 앞 세대보다 치열하게 대학 시절을 보냈다.
신 과장의 전공은 철학. 학회 활동을 열심히 했다. 전공이 중문학인 이 사원은 인터넷 언론 관련 동아리 활동을 했다. 허 팀장은 동아리나 학회 활동보다 도서관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전공으로 불문학과 철학을 이수했다.
3인방 사이에서도 미묘한 세대 차이는 물론 있을 것이다. 허 팀장은 최근 대학원에서 다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세대가 또 바뀌었음을 느꼈다. "아이폰이 나오기 직전 대학을 졸업했다. 때문에 대학원에서 스마트폰으로 운영되는 학교 시스템을 처음 경험했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으로 대학생활을 한 세대는 나와 정말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기술 발전에 따라 얘기를 나누는 커뮤니티가 다르고 기타 많은 것도 달라지니까 대학 때 스마트폰을 경험했느냐 안 했느냐도 중요한 것 같다."
한편은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글을 지향한다. 신 과장은 출판계가 늘 관심두는 언론ㆍ학계와 발 맞추되 그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한편의 지향점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저널리즘의 글보다는 호흡이 길지만 학계에서 다루는 논문보다는 쉽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글을 담겠다는 뜻이다. 내용적으로는 옳다, 그르다 식의 결론보다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 맥락 파악에 초점을 맞춘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삼성 주춤하자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1년 만에 흑...
신 과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필진 분들을 만나 보면 이거다, 저거다라는 식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학문이라는 것이 원래 더 깊이 파고들고 여러 가지를 관찰함으로써 구체적인 뭔가에 대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좋다 나쁘다 이런 판단을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시선으로 살펴보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