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나를 믿어 주는 아내처럼


할머니께서 매년 보내 주시는

쌀과 유자처럼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십이월처럼

커터 칼로 쌀 포대를 뜯다가

빛나는 하얀 손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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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가계도―머신 러닝 2/정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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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담한 시다. 나는 이 시를 읽고 한동안 이 시를 쓴 시인에게 연락이라도 한번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내가 알기로 이 시를 쓴 시인은 참 선한 사람이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가 있는데 다행히도(?) 작년부턴가 어느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밥벌이를 시작했다. 요컨대 그는 가난하다. 물론 가난은 시인만의 문제도 아니며, 시인으로 살기로 자처했다면 오히려 가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백석)며 시인의 고결과 위의를 지킬 수 있던 시절은, 그리고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신경림) 그리하여 자신의 순정한 사랑을 재가동시킬 수 있었던 시대는 차라리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난은 이제 시인마저 압살하고 있다. "빛나는 하얀 손목"이라니. 괴롭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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