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검찰 충돌… 전대미문 뒤에 숨은 '자충수' 우려
정경심 교수 사건 정식 재판은 시작도 못해
쟁점마다 첨예한 대립… 예고·예정된 수순
法과 달리 檢 물러섬 없어 향후 갈등 불가피
대통령 인사권 개입 비난 부담으로 작용하나
[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표창장 위조, 자녀 입시비리, 사모펀드 불법 투자 의혹 등으로 기소된 정경심 동양대 교수 사건 재판은 사실상 진척이 없는 상태다. 첫 기소가 이뤄진 지 어림잡아 100여일이 지났지만 아직 정식 재판은 시작도 못했다. 쟁점마다 재판부와 검찰이 첨예하게 맞서면서 공전이 거듭되고 있다. 애초 이 사건은 말 많고 탈도 많았다. 기소 당시에는 '정치적 기소'라며 여·야가 대립하더니 재판에 넘겨진 뒤론 수사기록 열람·등사 문제로 검찰과 변호인단이 날선 공방을 이어갔다. 이제는 그 대결구도가 법원과 검찰로 옮겨졌다. 법조계에선 "예정된 수순, 예고된 충돌"이란 얘기가 나온다.
충돌의 시작… 공소장 변경 불허
시간의 추를 돌려본다. 열흘하고 이틀 전이다. 10일 서울중앙지법 424호 법정에서는 재판부와 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공소장에 적시된 피고인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내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죄명은 사문서 위조였다. 자신의 딸인 조민씨가 동양대 표창장을 받도록 허위로 문서를 만들었다는 혐의다. 검찰은 정 교수를 이 혐의로 지난 9월6일 먼저 기소했다가 이후 보완 수사를 통해 지난달 27일 공소장 변경 신청을 했다.
이날 이 사건 재판부인 법원 형사합의25부(송일권 부장판사)는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허가 하지 않았다. "이 사건 공범, 범행일시, 장소, 방법, 행사목적 중 어느 하나 정도만 동일하면 동일성이 인정되지만 5가지 모두 변경돼 동일성 인정 어려울 것으로 판단됩니다."
검찰이 반발했다. 그러자 송 부장판사가 검사에게 물었다. "검사님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보신 적 없으십니까?" 송 부장판사는 말을 이었다. "재판부 판단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검찰은 나중에 선고 뒤 항소·상고할 수 있습니다. 재판부 입장에서는 협의로 최선을 다해 내린 결론입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위조 대상은 둘 다 동양대 총장 명의 표창장으로 같고, 부수적 사실만 추가 수사를 통해 구체화했다"며 공소장 변경 필요성을 계속 말했다. 검찰은 결국 송 부장판사가 "계속 그러시면 퇴정 요청 하겠다"고 엄포를 놓자 그제야 한 발 물러섰다.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전제로 재판을 준비해왔다. 공소장 변경 뒤 지난달 11일 추가기소한 자녀 입시비리 등 사건과 병합을 계산했다. 정 교수 혐의를 입증할 증거 또한 사건 병합을 전제로 꾸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검찰 시나리오의 첫 단추 격인 공소장 변경을 재판부가 불허한 것이다. 검찰은 재판 내내 재판부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재판 뒤에도 좀처럼 분이 가시지 않는 듯 했다.
검찰의 도전장 ‘추가 기소’
일주일 뒤 검찰은 정 교수를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사문서 위조)로 추가 기소했다. 기존 공소는 취소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표창장 위조 사건 공소장 변경을 불허하자 범행 일시·장소 등을 바꿔 새로 기소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장 변경이 합당하다는 판단을 상급심에서라도 받기 위해 공소를 취소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법원에 사실상 도전장을 던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2심에 가서 다시 공소장 변경 신청을 한다는 계획이라면 굳이 추가 기소를 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법원 판단이 잘못됐다는 메시지가 담긴 일종의 항의성 기소"라고 평가했다. 실제 검찰은 공소장 변경 신청 불허 결정의 부당성에 대한 의견서도 냈다. 재판부가 편파적으로 재판을 진행하며, 사건을 무죄로 예단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고형곤의 檢·송일권의 法, 정면충돌
검찰의 추가 기소 이틀 뒤 정 교수 사건의 공판 준비 기일이 열렸다. 19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 417호. 검찰 측은 재판 시작 10여분 전 입정했다. 무려 9명이나 나왔다. 고형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도 있었다.
정식 재판도 아닌 공판 준비 기일에 사건 수사를 이끄는 부장 검사가 법정에 나온 건 이례적이었다. 정식 재판에는 수사 지휘부가 직접 법정에 나오곤 한다. 공소 및 사실관계를 누구보다 꿰뚫고 있기 때문에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나선다. 그러나 공판 준비 기일은 향후 재판 절차를 논의하는 자리여서 수사 지휘부가 나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법정을 감돌았다.
이런 분위기는 재판 시작 5분도 채 안 돼 부푼 풍선처럼 터졌다. 포문을 연 건 고 부장검사였다. 재판부가 지난 공판 준비 기일에서 검찰의 이의 제기를 무시하면서 공소장 변경을 불허하고서도 공판 조서에는 '검사 측 별 의견 없다고 진술'이라고 정리한 것이 쟁점이었다. 고 부장검사는 "사전에 공판 진행 관련 의견서를 제출했고 공판중심주의에 따라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데 일방적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송 부장판사는 "재판부의 예단이나 중립성에 대해 지적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며 "되돌아볼 것이고 이의 제기한 내용은 수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송 부장판사 대답과 별개로 이번에는 다른 검사들이 물밀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항의하기 시작했다. "공판 조서에 기재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이의제기합니다."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요청하는 것이니 발언 기회를 주십시오." 송 부장판사가 "이러면 재판 진행을 못합니다. 검사님 자리에 앉으세요"라며 십 수차례 제지해도 소용이 없었다.
검찰은 이날 작심한 듯 반발했다. 마치 필리버스터를 연상케 하는 항의였다. 송 부장판사는 이런 검찰에 끝내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 검찰과 재판부가 치받는, 검찰 표현대로 전대미문의 재판이었다.
물러섬 없는 검찰… 향후 갈등 불가피
재판부와 검찰의 갈등은 향후 재판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20일 추가 의견서를 제출했다. 기소 이후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 능력에 대한 의견서로 알려졌다. 앞서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제시하며 "공소 제기 후 수집된 증거는 유죄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전날 공판에서 769개 증거를 추가 제출한 데 이어 재판부 소송 지휘권을 무시하는 취지의 의견서까지 냈다. 이전까지 검찰이 제출한 증거는 151개에 불과했다.
정 교수 사건의 다음 재판은 내년 1월9일로 예정돼 있다. 이대로라면 양 측 충돌은 불가피하다. 게다가 검찰이 지난 17일 추가 기소한 정 교수 표창장 위조 사건이 송 부장판사가 재판장인 형사합의25부에 배당된 상황이다. 정 교수 자녀 입시비리 등 사건과의 병합 여부로 갈등 조짐이 예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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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앞선 공판 준비 기일에서 몇 차례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부 판단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검찰은 나중에 선고 뒤 항소·상고할 수 있습니다." "재판부의 예단이나 중립성에 대해 되돌아보겠습니다." 다만 절대적인 검찰 태도가 걸림돌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그동안 검찰은 '추가 기소', '필리버스터', '법원 소송지휘권 무시한 증거 제출' 등 물러섬이 없었다는 것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런 검찰 태도에 대해 '자충수'가 될지 모를 부담감 때문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검찰은 대통령 인사권에 개입했다는 비난을 안고 조 전 장관 관련 의혹을 수사했다. 정 교수를 최초 기소한 것도 조 전 장관 인사청문회 당일이었다. 정치적 의도가 있는 기소라는 비판이 따랐다. 이런 상황에서 기소한 사건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로 이어진다면 여론의 역풍은 불가피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판결 뿐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여론이 형성되면 수사 자체가 잘못됐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며 "검찰은 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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