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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마리스 얀손스, 동토에서 피어난 영원한 코스모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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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Peter Mei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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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 출신의 세계적 거장 지휘자이자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SO) 음악감독 마리스 얀손스가 지난 11월30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76세. 현지 언론이 지인과 측근의 전언을 빌려, 지병인 심장 질환을 사인으로 거론했지만, 얀손스의 대외 언론 창구였던 BRSO 홍보 책임자 피터 마이젤이나 유족(미망인 이리나 얀손스, 딸 일로나)의 사인 확인은 아직 없다. 장례식은 이달 5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아홀에서 엄수된다.


얀손스는 1996년 오슬로에서 푸치니 ‘라 보엠’의 콘서트 버전 지휘 도중, 심근경색을 겪으며 무대에서 쓰러졌지만 심폐소생술과 인근 병원 후송으로 목숨을 구했다. 이후 제세동기 삽입 시술을 받았고 평소 가족과 고인을 초청한 주최측이 얀손스의 건강 관리에 주의를 기울였다.

고인은 지난 여름에도 약 3개월간 잡힌 예정 공연을 취소하면서 치료에 전념했다. 10월부터 활동을 재개했고 11월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와 BRSO의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소화했다. 11월말부터 예정된 빈 필 무지크페라인 출연은 취소했지만, 자택에서 12월 상트 페테르부르크 콘서트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BRSO의 11월8일 뉴욕 공연이 생애 마지막 지휘가 됐다.


얀손스와 2003년 계약해 2024년까지 음악감독직을 연장한 BRSO는 행정감독 니콜라우스 폰트 명의로 “고인의 죽음으로 음악계는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를 잃었다”고 추모했다. 고인이 음악감독 및 수석지휘자직을 지낸 오슬로 필(1979~2000), 피츠버그 심포니(1997~2004),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이하 RCO, 2004~2015)가 일제히 망자를 추도했다.


아바도와 래틀의 음악감독 퇴임 때마다 얀손스를 차기 지도자군에서 고려한 베를린 필과 신년 음악회 지휘를 여러 번(2006, 2012, 2016) 맡긴 빈 필 모두 거목을 기렸다.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는 12월1일 빈 필 공연에서 생전의 얀손스가 좋아한 라흐마니노프 회화적 연습곡 ‘바다와 갈매기’를 연주하면서 사자를 추념했다.

청년 시절의 얀손스 (C)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청년 시절의 얀손스 (C)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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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손스는 1943년 나치 점령의 리가에서 명지휘자로 이름을 날린 부친 아르비드 얀손스와 유태계 성악가 모친 이라이다 사이에서 났다. 외조부와 모계 형제들이 홀로코스트에서 잇달아 목숨을 잃는 비극 속에서, 이라이다는 소련이 라트비아를 병합한 이후에도 얀손스의 모계 혈통을 외부에 숨겼다. 얀손스는 가족이 겪은 나치의 불행과 구소련 시절 여형제가 KGB에 의해 시베리아로 유배당한 과거, 1984년 부친이 영국 할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 심장마비로 숨진 아픔을 외부에 털어 놓는데 힘들어 했다.

어려서부터 예민한 운동 신경이 두각을 나타냈고, 리가를 담당하는 운동 코치는 축구를 권했지만 부친이 재직한 리가 오페라, 라트비아 방송교향악단을 따라 다니며 자연스럽게 음악에 입문했다. 악기는 부친 지도로 바이올린부터 시작했다. 본격적인 음악 수업은 1956년 시작됐다. 지휘자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초청으로 부친이 레닌그라드 필로 직장을 옮겼고 얀손스도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비올라, 피아노를 추가로 익혔고 곧 지휘에 집중했다.


부족했던 러시아어를 보충하면서 니콜라이 라비노비치에 지휘를 수련하는 동안, 1968년 마스터클래스로 소련을 찾은 카라얀의 눈에 들었다. 카라얀은 서베를린 유학을 권했고, 1971년 카라얀 콩쿠르 2위 입상 후에도 조수 역을 제의했지만 소련 정부의 비협조로 무산됐다. 얀손스는 1969년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빈에서 한스 스바로프스키를, 잘츠부르크에서 카라얀을 사사했다.

카라얀과 얀손스 (C)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카라얀과 얀손스 (C)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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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므라빈스키의 지명으로 레닌그라드 필 조수로 기용됐고 1999년까지 악단과 공식 관계를 맺었다. 1977년 므라빈스키의 조수로 일본을 찾으면서 아시아와 인연이 시작됐다. 1986년 건강이 좋지 않던 므라빈스키를 대신해 악단의 일본 투어를 대신했고, 1992년 첫 내한 공연의 파트너 역시 레닌그라드 필(현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이었다.


1979년부터 21년간 오슬로 필 음악감독으로 거둔 성과가 얀손스가 서방에서 이룬 첫 결실이었다. 무명 악단에 머물던 오슬로 필은 얀손스를 만나 국제적 오케스트라로 부상했다. 1983년 영국 투어 직후 얀손스는 샨도스에 데모를 보내 ‘만프레드’를 포함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전집 발매를 이끌었다. 이 전집은 각국 평론에서 래틀과 버밍엄 심포니의 성공에 비견됐다. 오슬로 필은 프롬스, 잘츠부르크 축제 참가를 이뤘고, 1996년 첫 내한도 얀손스와 함께 했다. 그는 능력과 무관하게 동일 임금을 지급하는 단원 급여 체계를 개혁했고, 상주 공연장 오슬로 콘체르트하우스의 어쿠스틱 개선을 외면하는 오슬로 시 정부에 항의하면서 악단을 떠났다.


얀손스는 1997년부터 7년 동안 피츠버그 심포니 음악감독을 지냈다. 피츠버그 시절은 얀손스에게 고난의 시기였다. 유럽의 거점 도시들과 항공 연결이 쉽지 않았고, 심장 발작 이후 유럽과 미국을 오가면서 발생한 시차가 건강을 해쳤다. 그러나 특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에서 아찔한 수준의 기계적 테크닉을 받아내는 피츠버그 심포니의 기량을 얀손스는 EMI 녹음으로 외부에 자랑했다. 임기 막바지엔 악단이 재정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에 자신의 급여를 돌려줬고, 현지 언론을 통해 소비에 열광하는 미국인의 세태를 비판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예술이 자본에 종속되는 세태를 경고한 얀손스는 블랙 프라이데이 이튿날에 영면했다.


1970년대 레닌그라프 필에서 라흐마니노프, 1980년대 오슬로 필 시절의 차이콥스키와 시벨리우스, 1990년대 피츠버그 심포니 시절의 쇼스타코비치 결과물이 쌓이면서 1992년부터 5년간 수석 객원 지휘자를 지낸 런던 필, 1994년 데뷔한 빈 필을 중심으로 얀손스식 베를리오즈, 말러에 대한 관심도 확산됐다. 21세기 들어 암스테르담의 RCO와 뮌헨의 BRSO가 경쟁적으로 얀손스에 감독직을 제의했다. 음악은 완벽주의에 기초하지만, 정직과 인품으로 구성원을 이끄는 얀손스의 성정에 두 악단은 자신들의 미래를 맡겼다. 양 오케스트라 모두 2008년 영국 음악지 그라모폰이 선정한 ‘세계 오케스트라’ 랭킹에서 1위(RCO), 6위(BRSO)를 차지했고, 10위권 악단 가운데 복수의 조직을 책임진 마에스트로는 얀손스 뿐이었다. 명실공히 세계적 거장으로 우뚝 선 얀손스를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확인한 계기도 RCO(2010), BRSO(2012, 2014, 2016)의 연쇄 내한을 통해서다.

(C) Warner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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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악단에 RCO를 위치시킨 얀손스는 전임 감독 빌럼 멩엘베르흐가 남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베르나르트 하이팅크가 뿌린 브루크너의 유산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음악관을 악단에 전이했다. 특히 2010년 RCO 내한에서 보인 얀손스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는 2010년대 뿐 아니라, 해외 악단의 역대 내한공연사를 대표할 공연으로 꼽을만 하다. 자신의 지휘 뿐 아니라 다양한 정기 연주회 기록을 악단의 자주 레이블을 통해 출시하면서, 얀손스는 RCO에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정착시켰다. 2014년 4월 건강 문제를 들어 RCO 음악감독직 하차를 발표했지만, 세월이 흘러도 완벽을 요구하는 리허설의 강도가 세지면서, 잠복됐던 일부 단원과의 불화가 악단 외부에서도 감지됐다.


얀손스의 전성기와 마지막을 함께한 곳은 BRSO다. 2000년대 중반 이후 10여년 동안 얀손스와 BRSO의 조합은 독일 클래식계 최적의 콤비였다. BRSO와 얀손스가 베를린을 방문하면 ‘눈부신 사운드’ ‘유일무이한 지휘자’의 극찬이 이어졌다. 2012년 BRSO의 첫 내한에서도 얀손스는 베토벤 주요 교향곡으로 세계 최정상 지휘자의 면모와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실제 BRSO 공연에 얀손스가 등장하면 객석에서도 오랜 친구를 만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연주 직전, 오케스트라와 자신이 관객을 오랫동안 주시하는 관습도 얀손스가 건넨 제안이었다.


얀손스는 어려서 라트비아와 러시아, 빈에서 거둔 다양한 문화 체험으로 세계주의자로 살았다. 사선을 경험했던 얀손스는 음악 뿐 아니라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건강을 위해 휴식을 권해도 “행운과 칭찬에 자만해서는 안된다”며 자신과 악단을 채찍질했다. “인간은 과거의 향수만으로 살 수 없고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인생 모토로 삼았다. 생애 후반기를 바친 뮌헨에 콘서트홀을 안겨주기 위해 20년 가깝게 정치권과 투쟁하고 타협했다. BRSO와 2024년까지 계약한 것도 개관 공연을 주재하기 위함이었다.

(C) Peter Mei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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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손스는 여섯 차례의 내한 공연 이외에 사라 장, 백건우, 조성진과 협연했다. 2013년부터 BRSO 제2바이올린 단원으로 얀손스를 접한 이지혜는 2018년 유럽 투어 도중에 100명이 넘는 단원, 무대 노동자를 식사에 초대해 뿌듯해하는 얀손스를 2018년 BRSO 내한 책자에 남겼다. 2019년 1월, 베를린 필 정기 연주회에서 얀손스와 연주한 비올리스트 박경민(현 베를린 필 정단원)은 “인격적으로, 음악적으로 진심으로 존경하는 어른”으로 고인을 추억한다.


2020년 빈 필 신년음악회에 데뷔하는 라트비아 출신의 안드리스 넬손스(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보스턴 심포니 음악감독)가 오래전부터 얀손스를 계승하는 후계자로 주목 받았다. BRSO는 영국 지휘자 다니엘 하딩에게 2019~2020 시즌 얀손스 예정 공연을 주로 맡기면서, 후임 음악감독군을 물색할 것으로 보인다.


한정호 에투알클래식 & 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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