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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부패·모순의 사회, 그럼에도 버리지 못할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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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14년 만의 스크린 컴백 이영애

[라임라이트]부패·모순의 사회, 그럼에도 버리지 못할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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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자동차 안에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감돈다. 운전석에 앉은 정연(이영애)의 마음 같다. 표정이 심상치 않다.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르는데 눈빛은 시퍼런 독기를 품고 있다. 정연은 눈물을 닦아내지 않는다.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뭔가 준비한다. 피바람이 몰아칠 것 같은 불길한 기운.


정연은 6년 전 실종된 아들을 애타게 찾는 엄마다. 아들을 봤다는 연락에 찾아 나선 낯선 마을에서 사람들이 뭔가 숨긴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복수의 대상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 비정한 사회의 부패와 모순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기 때문이다. 배우 이영애가 영화 ‘나를 찾아줘’ 시나리오에서 가장 주목한 대목이다.

“영화에 아동 학대를 다루는 부분이 나와서 고민했지만, 현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잔인해요.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에게 비참한 현실을 전달하며 좋은 메시지를 주는 것이 배우로서 큰 보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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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의 연기는 모성만 가리키지 않는다. 인간미를 상실한 사회의 피해자로 확대해 표현한다. 주위 사람들은 정연의 피맺힌 슬픔을 안타까워할 뿐, 진심으로 위로하지 않는다. 남의 일이라 여기며 함부로 말하고 경솔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허위 제보로 장난치거나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정연은 계속된 절망과 분노에도 주저앉지 않는다. 몽롱한 광기와 단념의 빛 사이를 넘나들다 억눌린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그러나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조금도 멀어지지 못한다. 이영애는 “촬영장에서 많이 힘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엄마가 되고 보니까 아이를 잃어버린 감정이 더 아프고 슬프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감정을 앞서가지 않고 알맞게 조절하는 데 많이 신경 썼어요.”

이영애는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도 아이 잃은 아픔과 죄책감을 표현했다. 이번 영화와 성격은 판이하다. 금자(이영애)는 하얀 두부에 파묻은 얼굴을 끝내 들지 못한다. 뜻하지 않게 이별한 딸 제니에게 진심 어린 사과로 용서를 받지만, 여전히 백 선생(최민식)의 원모 살해에 가담한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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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은 자식에게 사과할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피해자다. 이를 가볍게 여기거나 가로막는 사람들과 충돌할수록 자괴감과 분노가 증폭된다. 우리 사회의 위선과 부당함을 호소하는 처절한 절규다. 이영애는 “‘친절한 금자씨’에서 그린 모성과 차이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나를 찾아줘’에는 모성애뿐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이 많아요. 우리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에요. 저의 새로운 면도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겁 없이 뛰어들었어요.”


이영애는 ‘친절한 금자씨’ 뒤 14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했다. 그는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간 줄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결혼을 뒤늦게 했잖아요.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까 연기에 욕심부리고 싶지 않더라고요.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야 늘 있죠. 그런데 드라마 ‘대장금(2003~2004)’이 히트 치고 ‘친절한 금자씨’까지 해외에서 호평을 받으니까 ‘더 이상 뭘 더 바라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개인적 욕심을 버리고 가정에 안주하며 또 다른 행복을 찾았죠.”


그가 그린 정연의 처연한 슬픔은 긴 공백이 무색할 만큼 사실적이고 세밀하다. 보편성 안에서 상상하고 만든 이야기인데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착각이 인다. 그만큼 세상을 보는 안목과 연륜이 연기에 깊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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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우 감독은 “이영애와 작업하는 모든 순간에 감탄했다”며 “이영애는 프레임 안의 공기가 바뀔 정도로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영애가 바랐던 바다. “배우를 가리켜 와인 같다고 하잖아요. 오래 숙성시킬수록 그 맛이 깊어지고 향은 멀리 퍼진다고. 저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나를 찾아줘’를 촬영하면서도 다른 결의 금자씨가 나오기만 희망했어요.”


이영애는 새로운 시도를 거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로 호흡을 맞추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왠지 조용하고 얌전해 보여 그런 연기만 할 것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보는 사람이 놀랄 만큼 섬뜩한 장면을 잘 소화하고 아주 우스꽝스런 장면도 해낸다. 이영애는 무엇을 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다.”


이영애는 ‘나를 찾아줘’에서도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강인한 면모를 나타내는 데 몸도 사리지 않는다. 드넓은 갯벌에 온몸을 내던지고 차디찬 바닷물 속에 뛰어들어 허우적거린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번 더’를 외칠 만큼 적극적이고 대담하다. 그는 “늘 새로운 연기를 희망해요”라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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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을 조금 믿는 편이에요. 저는 AB형이에요. A형와 B형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죠. 그래서 다양한 걸 좋아해요.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때로는 그런 배역들을 연기하면서 해방감마저 느껴요. 금자씨로 연기하지 않았다면 언제 빨간 아이섀도에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어보겠어요? 카메라 앞이니까 가능한 일이죠. 연기한다고 핑계를 댈 수 있으니까(웃음).”


이영애는 다양한 연기를 하면서도 ‘CF 여신’이라는 이미지 장벽까지 공고히 다진다. 순수하고 맑은 표면은 온전히 간직하면서 때로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묘한 매력도 발산한다. 그는 이 힘이 고스란히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 ‘나를 찾아줘’에 출연해 고생을 자처한 이유도 여기 있다.


“10대에는 좋은 배역을 얻기 위해 부단히 뛰어다녔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노력파였죠. 지금은 안정적으로 작품을 고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어요. 웬만하면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주는 쪽으로 택하고 싶어요. 배우로도, 엄마로도.”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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