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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도시순례] 영등포와 구로, 공간으로 달라진 성장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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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도시순례] 영등포와 구로, 공간으로 달라진 성장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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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성장과 맞닿은 도시의 성장

대표적 공업지역이었던 영등포

70년대 공해 심화로 사업소 대거 이전

대부분 주택ㆍ상업시설로 바뀌어


구로는 국가산업단지로 존속

섬유업체들은 해외로 빠져나갔지만

지식집약산단으로 전환돼

벤처ㆍIT업체들 대거 몰려

서울의 미래 책임지는 공간으로

도시는 성장하면서 계속 변화한다. 외부로 확장하면서 새롭게 변모하기도 하고, 기존의 중심지는 쇠퇴하고 새로운 곳이 떠오르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이 성장하고 흥망성쇠를 겪듯이 도시 역시 비슷한 길을 걷는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그때 왜 그랬을까?'하는 마음이 들면서 '그때 다르게 했었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보기도 한다. 도시 역시 한순간의 선택이 많은 것을 바꿔놓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의 선택과 결정이 옳은 것이었는지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된다.


도시가 성장을 시작할 때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하지만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산업의 성장이다.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면서 관련된 생산시설들과 인력들이 유입되면서 도시는 성장한다. 산업은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여러 기업들과 인력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기업과 생산현장이 한 곳에 모이게 되면 집적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효율성을 보이기 시작하고, 새로운 산업의 등장을 위한 기반을 제공해준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증가하는 인구로 인한 주택수요의 증가와 산업시설로 인한 여러 가지 피해로 인해 기존 산업이 차지하고 있던 토지를 주택으로 전환하도록 압력을 높이곤 한다. 이런 경우 과연 도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의 경우 이런 대표적인 사례가 영등포와 구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영등포 지역은 1930년대부터 각종 공장이 입지하면서 대표적인 공업지역으로 성장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한동안 대한민국 최고의 공업지역으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방적, 섬유 등 경공업뿐만 아니라 기계ㆍ식품 등 다양한 업종들이 자리 잡은 영등포 지역은 구로를 거쳐 인천까지 연결되는 수도권 최대의 공업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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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면서 공해로 인한 각종 피해가 심화되자 정부와 서울시는 공해유발업소들을 시 외곽으로 이전하도록 하면서 공단의 축소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도시가 지금의 안산시였다. 공장들이 이전하는 지역들을 당초 서울시는 매입해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대부분 주택용지로 매각됐다. 이렇게 매각된 주택지에 새롭게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이전 압력은 더욱 커지게 됐다. 결국 1990년대를 거치면서 기존의 산업시설들은 대부분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남은 땅들은 개별적으로 아파트나 상업시설로 전환됐고, 극히 일부의 부지만 공원으로 바뀌었다. 체계적으로 계획되지 못한 아파트 단지들은 다른 지역의 아파트에 비해 경쟁력을 갖지 못했고, 영등포 전체적으로도 산업시설이 떠난 이후 특별한 산업의 성장과 발전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에 비해 구로공단은 다른 길을 걸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수출산업단지개발조성법에 의해 서울 구로구 구로동과 금천구 가산동 일대에 총 60만평(192만5000㎡) 규모로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산업단지였던 관계로 이곳은 계속 산업단지로 존속할 수 있게 됐다. 물론 1980년대 후반부터 높아지는 인건비로 인해 경쟁력을 상실한 섬유업체들은 해외로 이전하거나 폐업을 하면서 1년 사이에 노동자가 13%씩 감소하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7년부터 벤처타운 건립을 통한 지식집약산업단지로의 전환을 추진했으며, 200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테헤란로 등에 있던 IT업체들이 대거 이 지역으로 몰리면서 첨단산업단지로 변모했다. 현재는 1만여개의 기업체가 입주해 15만8000명의 근로자가 생산 활동을 하고 있는 서울 유일의 국가산업단지로서 기능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초 높은 용적률의 지식산업센터를 전제로 건설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증가한 인구와 차량으로 인한 혼잡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공업지역으로 건설된 탓에 문화 및 여가활동을 즐길 만한 곳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미싱에서 컴퓨터로 사용하는 도구만 바뀌었지 장시간 노동의 관행은 여전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지만 구로공단은 '공간'을 지속적으로 확보했기에 성공적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게 됐으며, 이제는 오랫동안 낙후지역으로 꼽혀왔던 금천, 구로 및 광명지역은 물론 서울의 미래를 책임지는 공간이 됐다.


만약 영등포 지역을 단계적으로 고도화ㆍ첨단화시킬 수 있었다면 지금의 영등포, 서울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첨단이 아니더라도 기업들이 떠나간 땅을 그대로 아파트로 만들지 않고 공원이나 미래를 위한 용도로 활용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1970년대부터 서울시는 도시계획에서 끊임없이 영등포 지역을 핵심 부도심권으로 육성하고자 노력했지만 동력을 상실한 지역으로서는 주어진 기회를 챙기기에는 힘이 부쳤다. 그 과정에서 애써 조성했던 아파트단지들과 상업시설들은 새로운 동력이 돼주지 못했다.


도시는 단순한 주거지역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도시의 인구는 그 자체로 경쟁력의 원천이자 소중한 자원이지만 그러한 인구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며,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간 역시 필요하다. 우리 도시들은 이러한 공간들을 유지하거나 미래를 위해 변화시키기보다는 당장의 필요에 의해 소모시켜왔으며, 이 과정에서 도시들은 활력을 잃으면서 인구마저 줄어들게 됐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산업시설은 도시와 떨어져 있어야 하고, 가급적 빨리 외곽으로 내보낸 다음 그 지역을 아파트와 같은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게 됐다. 그렇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주거ㆍ상업지역들은 결국 그 자체로 도시를 새롭게 발전시키기보다는 잠시 동안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조용히 쇠퇴하는 길을 걷곤 한다. 도시의 확장에 따라 의도하지 않게 도심에 편입된 산업시설들은 미움의 대상이 되고 이전시켜야만 하는 대상이 된다. 그렇지만 그렇게 얻어진 땅을 확보할 자금도, 활용할 아이디어도 없는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천편일률적인 주거단지로 만들기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은 도시의 공간들이 기대에 딱딱 맞춰가며 변화하기를 원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다른 용도로 바꾸고 나면 다시는 원래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과거의 관행과 판단으로 미래를 스스로의 손으로 망쳐버리는 일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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